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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5 16:18 수정 : 2005.03.25 16:18

마크 트웨인 자서전

나는 이즈음 자서전이나 평전을 즐겨 읽고 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평론집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의 서문에서 “근년에 나는 소설보다는 가령 자서전이나 평전에, 문학보다는 역사나 현실 관련의 책들에 더 많이 마음이 쏠리고 거기서 글읽기의 즐거움을 더 누리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소문자의 ‘히스토리’(자전)가 대문자의 ‘히스토리’(역사)로 비약하는 지적 즐거움이 문학작품 못지않은 데다, 쇄말주의라는 덫에 걸려 있는 우리문학에 대한 실망감이 나로 하여금 자서전류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듯싶다.

자서전 읽기의 즐거움은 읽는 이의 삶과 일치하는 대목을 만날 때 극대화한다. <마크 트웨인 자서전>에서도 예의 그런 기쁨을 만끽하였다. 나는 농담 삼아 신앙을 잃은 계기는 어린 시절의 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신주에 연이 하나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타지에 나가 있었던지라, 연을 만들어줄 어른도, 사줄 돈도 없었다. 그때 나는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이 떠올랐다. 여리고성을 에워싸고 일곱바퀴를 돈 다음에 무너져라, 하고 외쳤더니 그 견고한 성채가 폭삭, 주저앉았다고 하지 않은가. 나는 기도하며 일곱바퀴를 돈 다음 크게 외쳤다. 쓰러져라! 학교 선생님한테 구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는 성경말씀을 배운 마크 트웨인은 친구가 가져오는 생강과자가 탐나 그것을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숨겨 놓았을 법한 과자가 기도가 끝나면 손닿는 곳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하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생강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하나의 배교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동네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어 최면술사의 최면에 걸린 척하며 온갖 연기를 해대던 이야기는, 최인호의 <지구인>에 나오는 대목과 겹쳐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마술사 최씨는 종세에게 “비밀을 아는 순간 같은 마술사가 되지”라고 말해 주었다. 비둘기가 사라지는 마술을 할 적에 비둘기는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관객의 손에 쥐어진다. 비밀을 공유하는 순간, 그것은 폭로되지 않고 포장된다. 속임의 인생론이라 이름붙일 만한데, 어쩌면 그것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지도 모를 터이다. 이 자서전의 백미는 딸 수지가 열세살 무렵 쓴 전기를 인용하고, 마크 트웨인이 토를 달아놓은 부분이다. “아빠는 우리에게 엄청나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는 대목에서 아이들에게 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진땀 흘렸던 행복한 시절을 되돌아본다. “정말 단순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돌머리’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수지가 아버지의 결점을 덮어두지 않는 솔직한 전기작가라고 추켜세운다.

만약, 딸이 내 전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하고 짐작해 보았다. 알 만했다. 얼마 전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몰려들길래 걱정이 되어 넌지시 물어 본 적이 있다. 아빠가 있어서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니, 라고. 딸이 심드렁하게 한마디 했다. 아빠는 겉으로는 인자해 보이잖아, 라고.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마크 트웨인은 성공한 인생임에 틀림없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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