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5 17:39
수정 : 2005.03.25 17:39
한승원 소설 ‘흑산도 하늘길’
작가 한승원(66)씨가 흑산도 유배 시절의 손암 정약전(1758~1816)을 주인공 삼은 전작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문이당)을 내놓았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약전은 그들 형제를 총애하던 정조가 승하한 뒤 일어난 신유사옥(1801)으로 전라도 신지도로 유배되었다가 곧이어 조카사위인 황사영이 유발한 백서 사건으로 절해 고도인 흑산도로 옮겨가기에 이른다. 소설은 손암이 소흑산도(우이도)와 대흑산도를 오가며 유배 생활을 하는 틈틈이 어류 백과사전 격인 <자산어보>를 저술하고 결국 유배지에서 마감하게 되는 생애의 마지막 16년을 돋을새김한다.
그 16년은 절망과 절대고독의 16년이었다.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신봉했다 하여 죄인의 처지로 내려온데다, 온통 상놈에 뱃사람들 투성이인 동네에 이렇다 할 말벗 하나 없이 떨구어진 외톨이 선비로서 그가 맛보았을 쓰라림과 외로움은 함부로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손암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현지에서 얻은 첩이 담가 준 술에 빠져드는 한편, 유배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어류와 패류 등속을 빠짐없이 글로 기록하는 길을 택했다. 작가 한씨는 <현산어보> 중의 ‘승률조개’에 관한 기술에서 손암의 암담한 현실과 그로부터 벗어날 한가닥 아련한 가능성의 변증법을 찾아낸다. 조개 속에서 태어난 파랑새가 창공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다시금 조개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는, 장자 식의 ‘허무맹랑한’ 기록에 삶과 꿈, 구속과 초월, 일상과 해탈을 한 틀에서 보고자 하는 손암의 욕망이 투사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 파랑새는/심연 속에 둔 자기의 밤송이 같은 조개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바다를 버리고 창공으로 날아가기도 한다/나도 그러고 싶다”
인용한 글은 작가 한씨가 일찍이 1990년에 낸 시집 <열애일기>에 포함된 <승률조개>라는 시의 전문이다. 작가가 오래 전부터 유배지의 약전에 관심을 지니고 공부를 해 왔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1996년 8월에 고향인 전남 장흥에 스스로 ‘해산토굴’이라 이름지은 집필실을 마련해서 낙향한 작가는 “내가 지금 토굴에 스스로를 가둬 놓고 있는 것은 손암과 다산 형제에게 배운 것”이라며 “이 소설은 내 삶이 가장 많이 투영된,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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