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30 17:58
수정 : 2005.03.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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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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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가장 큰 축제인 예수부활 대축일을 보냈다. 부활 계란을 나누고 할렐루야 인사를 하며 유난스레 북적대던 교우들이 모두 돌아간 성당은 이내 고요 속에 빠진다. 성당은 늘 그렇게 북적댐과 고요함이 교차한다. 조용한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교우들은 빈 성당이나 경당에 흔적도 없이 앉아 묵상을 한다. 그래서 도심의 성당은 선한 마음을 아우르는 친교와 나눔의 공간이기도 하고 자신을 관조하게 하는 침묵의 공간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직장인 주부 학생 할 것 없이 모임도 많고 가볼 곳도 많아서 겹치기로 쫓아다녀야 한다. 친교와 업무와 회의가 넘친다. 바쁘다는 것은 뭔가 역할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적 지위처럼 여겨지는 마음은 아닐까. 정신도 영도 없고 껍데기 몸만 모이고 흩어지는 속에서 근본이 되는 것, 줄기가 되는 것, 우선할 일 나중할 일이 제대로 식별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영화는 욕설이 난무하고 음악과 댄싱은 숨 가쁘게 빠르고 성질은 급하다. 고속도의 삶을 강요하는 현대 세계는 인간을 소음 가득한 거대한 공장에서 고속의 톱니가 되어 자기를 잃어버린 소외와 고독으로 울게 한다. 누군들 그렇게 정신없이 살고 싶겠는가. 경쟁사회에서 산다는 게 그러한데 아니면 어쩌라고! 그러니까 친교와 모임 못지않게 침묵의 시간도 절실히 필요하지 않겠는가.
침묵이란 자연의 숨결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시끄럽던 기계가 멈춘 공장도 적막하고 대형 사건 사고를 생중계하는 텔레비전 앞의 눈길도 조용하지만 그것은 소음의 중단일 뿐 침묵이라 하지 않는다. 산속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계곡의 폭포와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는 우렁차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흐름으로 내면의 귀와 눈을 어지럽게 하지 않기에 침묵이 된다.
4세기의 베네딕도 수도규칙은 정주(머무름)와 침묵을 강조한다. 마치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속삭이듯이…. 침묵은 자신을 돌보게 하는 거울이며 지혜의 우물이다. 침묵의 시간을 갖도록 애쓰자. 가족들이 없는 시간에 전화기 코드를 뽑고 명상에 잠겨보자. 때론 혼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까운 곳을 다녀와 보는 것도 좋겠다.
박기호 신부(서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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