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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1 15:23 수정 : 2005.04.01 15:23

스픽스의 앵무새 \

한마리 몸값이 수억원 멸종 스픽스앵무…
1년 365일 하늘만 보며 새 많이 보기 경쟁…
집착이 빚은 새의 수난 인간과 자연 관계 곱씹어

매혹 되는 쪽도, 매혹의 대상이 되는 쪽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간이 새에 빠져드는지. 인간도, 새도 알 수없는 불가사의다.

사람들이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도 새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단순히 새들이 인간에게는 없는 비행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새를 바라보는 인간의 눈길은 분명 특별하고,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새에 빠져든다. 그런 집착을 상징하는 새가 바로 앵무새다. 발을 손처럼 사용하는 새, 사람처럼 헌신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처럼 말하는 새. 게다가 아름답고, 사람처럼 오래 살아 평생을 두고 옆에 둘 수 있는 새. 아이러니하게도 앵무새는 인간과 가장 비슷했기 때문에 인간과 비극적 관계를 맺게 됐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앵무새는 부유층의 액세사리로, 앵무새의 깃털은 장식품으로 만들었고, 끝도 없이 앵무새를 계속해서 원했다.

서구인의 남미 침략은 ‘앵무새의 땅’ 브라질의 앵무새들에게도 원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똑같이 선사했다. 특히 카팅가 지역에만 서식하는 단 4종류뿐인 파란색 앵무새들은 가장 가혹한 운명을 맞았다. 자연에서는 드문 파란 빛깔이 사람들을 열광시킨 탓이었다. 이 파란 앵무새 가운데에서도 가장 희귀종이 스픽스유리금강앵무란 앵무새다. 세계적으로 350여종에 이르는 앵무새 중에서 71종이 현재 멸종위기에 몰려있는데, 스픽스유리금강앵무는 이 명단에 빠져있다. 그 이유는 이 새가 이미 야생상태에서는 멸종됐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스픽스유리금강앵무는 모두 우리에서 사육 되는 것들로 고작 60마리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운동가 토니 주니퍼가 쓴 <스픽스의 앵무새>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희생된 이 앵무새의 멸종과정을 고발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스픽스유리금강앵무를 멸종으로 몰아간 것은 오직 한가지. 인간의 수집욕이었다. 희귀 앵무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규모 개발로 앵무새 서식지인 숲이 날로 사라지고 있고, 밀렵으로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수집가들의 광적인 소유욕은 더욱 강해진다. 국제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것은 오히려 이들의 욕망에 불을 질렀다. 그러다보니 야생동물도, 조류 전체도 아닌 앵무새의 밀거래 규모가 수십억 달러대인 마약 시장이나 불법 무기거래 시장 규모에 버금가는 상식을 의심케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스픽스유리금강앵무의 값이 한 마리에 수억원, 같은 무게의 헤로인보다 비싼 것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광기의 하이라이트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인류의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했던 2001년, 스픽스유리금강앵무는 마침내 생태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인간 스스로 만든 창조물의 파괴보다도 주목받지 못한 채 이 새는 조용히 퇴장했다. 그 이후 이 책의 지은이를 비롯한 운동가들은 사육중인 스픽스앵무새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려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지만 가능성은 실낱보다도 가늘다. 이 새의 슬픈 사연이 “생명에는 대안이 없다”는 교훈을 영원히 전해줄 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스픽스의 앵무새>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역시 새에 대한 인간의 못말리는 집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책이 <빅 이어>다. ‘빅 이어’는 한 해 동안 누가 더 많은 종류의 새를 북아메리카 안에서 목격했는지를 겨루는 시합이다. 북아메리카 전체에 서식하는 새는 모두 675종이지만 기상 이변이나 길을 잃어 흘러온 새들까지 발견해서 700종 이상을 발견해야만 이 시합에서 신기록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철새 이동 경로를 찾아 1년간 여행 일정을 잡고 한 달에 1천만원 이상의 경비를 들이며 헬기에 배를 빌려 1년에 40여만 킬로미터를 주파하며 새를 쫓는다. 책은 세 사람의 도전자가 경이로운 기록을 내며 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1998년의 시합을 소설처럼 재구성했다. 이들의 놀라운 열정은 새에 대한 인간의 거의 맹목적인 애정을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그들이 왜 이 시합에 매달리는지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산이 그곳에 있어 올랐다던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이들도 새가 그 곳에 있어 쫓았을 뿐일까? 새들이야말로 그 대답을 가장 듣고 싶어할 것 같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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