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환경부터 만들어줘야 교육인적자원부가 2007학년도 고등학교 신입생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고 2010학년도부터 이를 대입 전형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란 것이 알려진 뒤 출판계는 교육부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독서교육을 펼쳐나갈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3월 22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초·중·고등학교 독서지도 지침서 발간 계획은 앞으로 이와 관련한 좌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침서는 교과의 특성, 단원의 내용, 주제별 특성을 고려해 추천도서를 예시했다. 이렇게 책을 읽히기 위한 모델을 개발해 다양하게 예시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모델은 충분한 ‘임상실험’을 통해 제대로 검증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지상에 발표된 목록을 살펴보면 이런 졸속 행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교과에 따라 추천자의 경험에 따른 고난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목록이 매우 부실하다. 추천도서 선정이 매우 짧은 시간에 급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수학이나 과학의 경우 청소년용 책이 턱없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과연 이렇게 눈높이가 높은 책을 아이들이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의아해지는 책마저 다수 포함돼 있다. 선정자들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선정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이들 추천도서가 단지 교사지도용 참고도서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 확인해보니 일부에서는 이미 필독서로 여기고 있고, 어떤 학교에서는 이 책들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해야 한다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독서 이력철이나 독서인증제마저 거론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이런 목록을 ‘적당히’ 보완해 결국 대입 전형과도 결부시킬 계획으로 나아갈 것으로도 여겨진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아이들에게 독서란 학업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교과서와 억지로 연결한 추천도서들은 부담만 가는 참고서에 불과하다. 책 읽기를 학업성적을 올리기 위한 실용적인 수단으로만 인식시켜 버리면 그것은 곧 아이들로부터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며 결국 아이들은 책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책에 대한 접근성을 키워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쉬는 시간 같은 자투리 시간에도 쉽게 들를 수 있는 위치에 학교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곳에는 충분한 장서를, 그것도 신간 위주로 다양하게 구비해 놓아야 한다. 슈퍼마켓의 두부처럼 늘 신선해서 언제든 아이들의 손길이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책과 너덜너덜해진 책은 자주 솎아주고 ‘신선한’ 책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런 책들이 1만권 넘게 갖춰진다면 독서교육은 저절로 활성화될 것이다. 물론 전문 사서와 교사들이 아이들 각각의 눈높이에 맞는 적합한 책을 권해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권해주어야 할 것이다.
졸속 대책만 남발하는 정책당국자에게 정말로 부탁한다. 제발 원칙으로 돌아가 책 읽는 환경이 무엇인가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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