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1 17:33
수정 : 2005.04.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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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조국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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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8·15 광복절만 되면 외딴 곳으로 숨어드는 사람이 있다. 친일파일까? 천만에. 친일파들을 향해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다. 그는 잔칫날이어야 할 광복절을 두고 거짓 환상과 위선으로 가득 찬 날이라고 부른다. 1945년 일제는 물러갔지만 발빠르게 변신한 친일파들이 오늘날까지도 버젓이 주류의 자리를 꿰차고 있으며, 숙청된 건 친일파가 아니라 오히려 독립운동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씁쓸함이 되살아나는 광복절만 되면 경축의 냄새가 못미치는 산과 바다로 숨어든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자신의 굴곡 많은 삶을 되돌아보면서.
일제치하 1926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조문기 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진실을 듣는다. 일본과 싸우겠다는 결심을 세운 그는 일본에 다녀온 뒤 인생 최대의 동료 유만수 등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을 설립한다.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자국민의 분노를 조선인에게 돌린 관동학살에 앞장서 동포를 죽였던 박춘금을 비롯한 1급 친일반역자들이 경성(서울) 태평로 부민관에서 민족대학살을 결의하는 자리를 거사의 목표로 삼고, 마침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데 성공한다. ‘부민관 폭파사건’이라 불리는 이 일이 있은지 22일만에 꿈에도 그리던 해방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념으로 남과 북이 갈리고, 남에서는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를 한다. 탄압을 당한 건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좌우를 떠나 민족의 온전한 해방을 위해 뛰던 그는 ‘인민청년군’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실형을 산다. 민족 상잔의 비극 속에서 갈등하던 그는 6·25 전쟁 뒤 유랑배우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그를 대통령 암살과 정부 전복을 기도한 무리로 모는 등 끊임없이 괴롭힌다. 드라마 <야인시대>가 김두한을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역으로 탈바꿈시키고 친일파들이 오히려 민족운동가로 둔갑하는 요지경 시대를 향해 일갈해도 되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찾으려 했던 건 분단된 조국이나 친일파 천국이 아니라고요. 독립운동으로 나라 찾아 친일파한테 진상한 꼴이 된 겁니다.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는 진정한 해방을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겁니다.” 팔순을 맞은 노 독립운동가의 말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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