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8 17:19
수정 : 2005.04.08 17:19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 낸 조광권씨
2001년부터 청계천복원사업에 관여하며 청계천의 역사에 눈 뜬 인연 덕분에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라는 두툼한 책까지 낸 조광권(58) 서울시교통연수원장은 “300년 전 조선 영조가 청계천 개천공사를 벌일 때 벌어졌던 찬반 논란을 보면 지난 청계천복원사업의 찬반 논란과 어찌나 닮은꼴인지 신기했다”고 말한다.
그가 발견한 청계천의 역사는 흥미로운 국책사업의 역사 이야기다. 조선 태종 때 도시의 하수도 구실을 하던 청계천에 쓰레기와 토사가 점차 쌓이자 이를 정비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인 데 이어, 세종은 지류를 정비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심각한 국책사업 논쟁이 벌어졌다. 풍수지리학자들은 ‘명당수인 청계천을 깨끗이 정비해야만 국운이 돌아온다’는 논리를 폈고, 집현전 학자들은 ‘하천 주변 백성의 민생을 해칠 것이며 풍수지리에 따라 국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며 반대의 논리를 폈다.
조 원장은 “당시 논쟁은 집현전 학자들의 우세승으로 돌아갔고 이후 300년 동안 사림이 지배하면서 청계천 정비사업은 전혀 고려될 수 없었다”며 “300년만인 영조에 이르러 공사가 다시 시작됐고 다시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친환경 도시를 위해 청계천 공사가 재개됐다”고 말한다.
영조의 청계천 개천공사 과정은 오랜 행정관료인 그한테 “감동”이었다고 한다. “영조는 청계천 공사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준천사실>(濬川事實)이란 기록을 남도록 했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영조는 공사 결정 전에 8년 동안 하천 주변 백성들의 민생을 두루 고려하고 지역대표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공사의 타당성을 따진 뒤에 20만명을 ‘참여’시켜 공사를 벌였습니다.”
조 원장은 조선시대의 ‘민본주의’가 현대의 민주주의와 다를 게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조선시대 하천공사는 절대군주 혼자 결정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영조는 서구 민주주의 못잖은 민본사상에 서서 일을 처리했다”며 “오늘날 우리는 새만금사업이나 천성산 터널공사 같은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얼마나 충분하게 민의를 수렴하고 있는지 청계천의 역사에서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계천복원사업을 실제 정책으로 처음 입안했던 지은이는 올해 9월 이후 우리 앞에 드러날 청계천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기본공사는 끝났지만 아직도 하천 주변을 고밀도로 개발하자는 주장과 환경·역사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300년 전, 6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 주장과 갈등을 우리사회가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청계천의 미래는 달라질 겁니다. 그 모습은 우리 시대의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죠.”
그는 조선시대 청계천이 ‘치수’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청계천은 서울이 개발 중심 도시에서 환경과 사람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사건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는 인터넷 ‘청계천포럼’(
www.reseoul.com )에서 청계천에 관한 역사·문화 자료 등을 제공하는 청계천 역사모임을 이끌고 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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