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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8 17:24 수정 : 2005.04.08 17:24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
부당한 힘·돈벌이 유혹에 채찍 될것

“리 선생이 잡혀 들어가면 그때마다 내가 변론을 맡았는데, 한 번도 변론의 덕으로 나온 일이 없어 늘 나보고 ‘실형만 받게 하는 변호사’라고 농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지난번에 내가 변론을 맡지 않아 리 선생이 감옥 문을 나왔다. 내가 맡지 않아 리 선생이 나왔으니 리 선생이 나온 것 또한 내 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89년 당시 리영희 한양대 교수가 한겨레신문 방북취재단기획 사건으로 구속 기소되었다가 160일 동안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옥하자 지난날 그의 변론을 맡아왔던 이돈명 변호사가 농담 삼아 한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의 인권 상황을 잘 나타내 주는 이와 비슷한 농담 아닌 역설이 또 하나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한승헌 변호사의 ‘친체제론’이다. 권력이 양심수 변론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를 ’반체제 인사‘라고 비난하자 그는 말과 글로 이렇게 되물었다. “인권을 지키고 헌법을 지키는 쪽이 반체제인가, 인권과 헌법을 유린하는 쪽이 반체제인가. 이 되물음에 따른다면 지난날의 권력이 반체제이며 반체제는 친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박원순 변호사가 지은 ‘한국 인권변론사’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2003)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일제시대의 김병로 변호사 이인·허헌 변호사로부터 군사정권 아래서 박해받다가 작고한 이병린 변호사를 비롯한 오늘의 ‘인권변호사들’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독립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온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상황에 대한 기록과 더불어 감동적으로 펼쳐놓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21세기를 코앞에 둔 문명세계에 이런 야만적인 폭력이 있을 수 있었던가에 놀라게 되고 ,또한 그것이 바로 얼마 전의 우리 현실이었다는 것과 그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잊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고 놀라게 된다. 잇따른 연행, 구속의 남발, 고문, 변호사 면담의 제한 그리고 그 정점을 이룬 이른바 ‘정찰제 판결’….

검사의 기소내용과 구형량대로 판결해 주는 ‘정찰제 판결’에 이르러 우리는 독재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사법부의 판사들과 박해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소수의 정의로운 변호사들을 극명한 대조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의 그 판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법부와 검찰은 지난날의 그런 과오에 대해 한 번이라도 사죄한 일이 있는가 우리는 묻게 된다.

이 책은 지난 90년 동안에 걸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의 기록이며 또한 그와 함께 싸워온 변호사들의 고난의 기록이다. 군사정권의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함께 싸웠던 이른바 ‘4인방 변호사’(이돈명·조준희·황인철·홍성우 변호사), 특히 작고한 황인철·조영래 변호사에 이르면 우리는 그 숭고한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 책은 양심수들을 위해 법정에서 직접 싸웠던 ‘아름다운 가게’의 박원순 변호사가 자신과 선배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것이기에 더욱 정확하고 힘이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부당하게 힘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변호사가 인권이나 정의보다는 돈벌이에 더 유혹을 느끼게 될 때 이 책은 그것을 경계해주는 채찍이 될 것이다. 젊은 변호사들, 특히 사법연수원생들은 이 책에서 큰 용기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신홍범/ 도서출판 두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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