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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8 17:27 수정 : 2005.04.08 17:27

과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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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랄 데 없는 소녀는 진정 자석과 같네. 아무리 달라붙어도 강한 매력을 이길 수 없다네.” 12세기 무렵 중세 유럽의 어느 ‘사랑노래’ 속요의 한 구절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물체를 끌어당기는 자력의 신비함은 근대 과학혁명 이전까지 오랜 동안 ‘마술’ 같은 현상으로 이해돼 여러 문학작품에도 단골 은유의 대상이 됐다. 중력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힘이었다. 달의 중력에 의한 밀물과 썰물 또한 셰익스피어 같은 문호의 관심사가 되었다.

땅에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이나 태양계의 행성운동이나 모두다 중력의 작용이라는 뉴턴의 발견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서로 떨어진 두 물체 사이에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어떤 힘(만유인력)이 원격작용한다는 것은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일본인 야마모토 요시타카가 쓴 <과학의 탄생>은 지금은 과학 교과서의 상식이 된 중력과 자력이라는 자연의 힘이 고대 이래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는지를 추적하는 과학 역사서다. 그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 중세를 거치고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를 거쳐 마침내 뉴턴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인류의 지식체제에 ‘과학’이라는 틀이 갖춰지기 시작한 근대 과학을 향한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분량의 방대함이 압도한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은 어떻게 발견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지은이의 집요한 관심과 부지런함이 만들어낸 장대한 힘의 발견사가 무려 1001쪽에 고스란이 담겼다. 참고문헌의 목록만 52쪽 분량이다. 방대함 덕분에 중세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중세의 비주류 ‘자연마술’부터 뉴턴의 명성에 가린 여러 자연철학의 선구자를 아우르는, ‘힘’에 관한 철학·과학의 사유와 실험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 장대한 서사에 총감독 야마모토는 주연배우 뿐 아니라 수많은 조연과 엑스트라들을 출현시킨다. 게중에는 정통 과학사의 무대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인물들도 눈에 띈다. 중세에 우주의 무한성을 체계적으로 사유했던 쿠사누스, 근대 과학에 앞서 ‘자연마술’이라는 이름으로 빵 발효, 작물 개량, 자석의 힘 등 자연현상을 천착한 후기 르네상스의 델라 포르타, 자기철학을 구축해 지구를 활동적이며 능동적 존재로 파악한 길버트 등은 이 책에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나 뉴턴 못잖게 중요한 배역을 맡고 있다. 또 괴테, 셰익스피어 등 문호들의 작품과 민요 등에 나타난 힘의 인식들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마술같은 자력과 중력 가설·주장·시대상황이 어울려 빚은 ‘힘의 발견사’
흥미진진한 사유와 실험 1001쪽 방대한 분량 녹여


이 책의 장점은 과학의 발전을 ‘일직선의 진보’나 ‘천재 영웅의 작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은이가 말하려는 바는 ‘역사의 어우러짐’이다. 중세의 자연마술이나 지구를 거대한 활성 자석으로 바라본 길버트의 자기철학이, 중력이라는 이상한 힘의 발견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 지은이는 근대 과학의 탄생을 상징하는 중력의 발견이 여러 가설과 주장, 그리고 대항해 시대의 상황들과 어울려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수학과 기하학, 정량적 실험정신의 과학적 방법론은 하나로 난 오솔길을 걸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이 없던 중세시대에 실증적 자연마술의 흐름이 자연현상을 분석하고 실험하는 정신을 고무시켰으며, 길버트의 자기철학이 지구를 살아 있는 활성의 물체처럼 인식하게 하여 뉴턴의 중력 발견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과학사의 통찰은 대부분 서양 과학사학자들이 이룬 오랜 연구물을 성실히 반영한 것이다. 말년까지 연금술에 애착을 버리지 못했던 뉴턴, 중세 자연마술 사상의 실험정신이 근대 과학에 끼친 영향, 철두철미한 기계론의 자연철학자 데카르트의 영향 등은 모두 흥미진진한 과학사의 연구주제가 되어 왔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지은이가 20여년 동안 매달린 ‘힘의 발견사’에 관련된 무수한 원전의 자료와 과학사의 평가를 볼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지은이의 독특한 이력도 눈에 띈다. 일본 도쿄대학 물리학 대학원생(박사과정) 출신이면서 1960년대 당시 도쿄대 전공투 의장으로서 격렬한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유명한 ‘도쿄대 야스다강당 점거농성 사건’의 주도자였다. 입시학원 강사 등을 거치며 물리학사를 연구하는 과학저술가로 살아온 그는 20년 동안 준비하고 2년 동안 집필해 63살에 이 책을 완성했다. 장중한 책의 맛은 이런 오랜 준비과정의 증거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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