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8 18:23
수정 : 2005.04.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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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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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왕조사나 연대기적 서술은 기억을 거스른다. 외울 것이 많은 수험생들은 그래서 괴롭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가 기억할 만한 요소를 가려내 의미있는 이야기 35개로 세계문화사를 엮었다.
■ 꼭 그렇지만은 않아!=홍수통제로부터 문명이 시작됐다고 할 수는 없다. 메소포타미아 초기 기록에 치수 관련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중앙 집권화와 관개시설 정비가 시차를 두고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피라미드는 꼭 강제노역의 결과만은 아니다. 일꾼들은 농한기에만 동원돼 식량지원을 받았기에 일종의 ‘영세민 취로사업’이었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동서문화 융합이 이뤄졌다기보다는 그리스문화가 번졌을 뿐이다. 아벨라르-엘로이즈 이야기에서 보이는 ‘자립적 개인’은 고대-중세-근대의 시대구분이 도식적임을 말해준다. 아메리카에 노예를 강탈당한 아프리카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수탈을 감내할 정도의 체제였음을 방증한다.
■ 어 그래?=그리스는 원래 신정정치 체제였다. 도리아족이 기존 체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비로소 폴리스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바이킹족이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했다. 이들은 또 비잔틴 제국으로, 비단길을 거슬러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였다. 콜럼버스는 남미 오리노코강 어귀에서 앵무새를 발견하고 그곳이 지상낙원의 입구라고 믿었다. 마르틴 루터는 새 세상 건설을 운운하는 농민들을 ‘날강도’라 부르며 “모두 죽여 버리라”고 말했다. 기아의 시대인 18∼19세기에 옥수수와 감자 덕분에 되레 인구가 늘었다. 기차는 거리를 1/3로 줄여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 피가로의 결혼을 쓴 모짜르트는 ‘혁명적 음악가’였다.
■ 그렇게 깊은 뜻이?=테세우스 신화는 아테네가 크레타의 예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을 상징한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독재에 대한 경고를 담은 민주주의 교과서다. O형땅-T형강으로 된 중세의 세계전도에는 중세인들의 세계관이 담겼다. 중세에 사냥대상이 됐던 ‘마녀’는 국가와 교회의 틀을 벗어나려는 일반 민중의 상징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의 카지모도, 프랑켄쉬타인의 ‘그놈’, 에일리언 등 괴물 역시 민중의 이미지를 가진다. 디즈니 만화에는 미국, 자본, 남성의 힘을 주입하는 이데올로기가 들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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