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8 18:33
수정 : 2005.04.08 18:33
|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
\
|
의술은 인간의 불행을 먹고 자란다. 특히 수술기술은 돌멩이, 창, 총알, 화약연기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발달한다. 간단한 충수염 수술에서 복잡한 뇌 수술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외과수술에는 이러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임상의학자이자 연구가인 쿤트 헤거(1925∼1984) 박사가 정리한 <삽화로 보는 수술의 역사>가 김정미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자신이 유능한 외과의사이기도 한 그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 온 수술의 역사를 파노라마로 펼쳐 놓았다.
기원전 1만2천년 중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에서 인공적인 구멍이 발견된다. 역사가들은 이를 개공술의 흔적으로 본다. 인류의 역사와 수술사가 함께한다는 증거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일찌기 진통제로 코카인잎을 사용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2세기의 화타를 의술에서 첫 손에 꼽는다. 독화살을 맞은 관우가 그의 집도로 마취도 없이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받으며 장기를 두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는 뇌 수술까지 했다고 전한다.
‘의학의 아버지’ 하면 역시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그는 과거의 주술적이고 철학적인 경향을 배격하고 관찰, 청진, 촉진에 의거해 시술했다. 그의 수술법 가운데 흉막염 처치 등 몇 가지는 현재도 응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고대 의학을 태동한 인물로 갈레노스를 든다. 이론뿐 아니라 수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의 이론은 1500년 동안 유럽 의학을 지배한다.
의학이 과학으로 정립되기는 17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영국의 윌리엄 하비가 1628년 혈액은 순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지금까지의 의학 기반 자체를 바꾸게 된다. 이 무렵 방혈과 더불어 수혈이 유행하였는데, 혈액형 자체를 모르던 때라 사망자가 속출하기도 했다. 1901년 칼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 이전, 155번 수혈 가운데 100명의 생존자가 있었다는 공포스런 조사 결과도 있다.
주술 외존에서 과학으로…중석기~21세기 수술의 역사
방대한 자료 ‘파노라마’ 보듯 인물·일화 버무려 재미 쏠쏠
전쟁이 점철된 19∼20세기는 역설적으로 비약적인 의학의 발전을 이룬다. 통증과의 씨름도 함께 진행되어 에테르, 클로로포름을 거쳐 큐라레를 활용하기에 이른다. 루이 파스퇴르,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 세균학이 정립되면서 방부법이 발전하고, 수술용 장갑이 비로소 사용된다. 20세기에 이르러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뇌수술, 장기이식 수술 등이 전문화·세분화되어 일상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21세기는 수술의 발전사에서 전쟁보다 과학기술의 기여도가 더 커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방사선, 내시경 등이 그 예다.
의술은 전쟁의 소문과 과학기술의 발달 속에 천재적인 재사들에 의해 발전해 왔을까? 깨어진 머리, 찢어진 사지로 야전 수술대에 올랐던 졸병들, 시신 거둬줄 지인조차 없어 마루타가 된 부랑인들에게 헌사 한줄쯤은 어떨까. 자칫 지루하기 십상인 통사에 인물·역사적 사건·일화 등을 버무려 놓아 의학도가 아닌 일반인한테도 흥미있을 법하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치루 수술이 현재 영국의 국가인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를 낳았다는 사실 등 덤으로 얻는 것도 쏠쏠하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