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8 18:42
수정 : 2005.04.0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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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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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생 갈라파고스 물개가 따뜻하게 데워진 검은 화성암 위를 기어 어미 곁으로 다가와 햇볕을 쬔다. 어미 옆에는 갓 태어난 새끼 물개가 새근새근 자고 있다. …갑자기 1년생 손위 물개가 새끼 물개에게 사납게 덤벼들더니 목을 물어뜯는다. …어미는 동생을 죽인 1년생 새끼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한두 해 정도 더 키워준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책 제1장 제목은 ‘가족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다. 제2장은 ‘형이 죽느냐 아우가 죽느냐’, 제3장은 ‘어미 뱃속에서부터 서로 잡아먹는 상어 새끼들’이다. 제목들이 시사하듯 지은이 모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가젤과 이를 뒤쫓는 치타처럼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류에 흔히 등장하는 생물 종간의 사투가 아니라 종 내부의, 특히 가족·혈족 내의 섬뜩한 생존경쟁이다.
뱀상어는 어미 몸속 알에서 부화한 뒤 헤엄쳐다닌다. 놀랍게도 새끼들은 자궁 속에서 서로 잡아먹는다. 여러 개의 기다란 촉수가 자라난 배아들은 어두운 자궁 속을 돌아다니며 형제 알들을 먹어치운다. 어느새 이빨이 자라기 시작하고 몸집이 커진 배아들은 작은 배아들을 뜯어먹는데, 한 마리만 살아남을 때까지 이 과정이 계속된다. 먼저 부화한 검은독수리 새끼 A는 새끼 B가 부화한 지 몇 시간 안에 공격을 개시한다. 특히 B가 부모가 주는 먹이에 눈독을 들일 때마다 공격을 퍼부어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 간다.
이런 ‘유아살해’ ‘형제살해’는 사다새, 황제팽귄, 백로, 미국황조롱이 등에서도 나타난다. 모크는 말한다. “생태계가 풍부할 때는 혈족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량을 베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히려 가족 구성원이 서로 빼앗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단위는 진화론적 이기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가족집단 안에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족들이 틈만 나면 유한한 자원을 둘러싸고 죽음의 전쟁을 벌인다.” 결국 먹이싸움 때문이며, 그것은 생존과 진화에 가장 유리한 양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는 “갈매기, 물개, 두꺼비, 떡갈나무 등 다양한 생물의 가족 내 사회생활을 알면 인간가족 내의 상호작용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인간 역시 별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한다.
형제살해만 있는 건 아니다. 사마귀는 교미 중에 암컷이 몸을 돌려 수컷의 목을 베어버리는데, 목잘린 수컷은 놀랍게도 교미에 더욱 힘을 쏟는다. 목이 잘리면 뇌 바로 밑 신경절의 제어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암컷은 이렇듯 수컷을 살해함으로써 열정적인 교미와 먹이라는 두 가지 보상을 얻게 된다.
동물가족 내 갈등을 독보적으로 추적해왔다는 오클라호마대학 동물학과 교수 모크가 제시하는 진귀한 사례들이 볼만하다.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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