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8 19:13
수정 : 2005.04.08 19:13
김숨 소설집 ‘투견’
<느림에 대하여>로 1997년 문단에 들어선 소설가 김숨(31)씨가 8년에 걸쳐 발표했던 10개의 단편들을 묶었다. 자신의 첫 소설집이 되는 <투견>(문학동네 펴냄)이다.
‘유폐’와 ‘우리’라는 단어가 자아내는 불온한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가로지른다. 주인공들의 삶은 거개 제한적 공간과 시간에 유폐된 삶이다. 이는 삶을 제약할 뿐 아니라, 제약한다는 사실마저 은폐하는 ‘우리’의 본질을 내포한다. 운명에 철저히 복종하거나, 주인공들이 미래를 꿈꾼대도 그건 환상일 뿐 희망은 아니다. 작가가 인식하는 현실이다.
<새>를 보자. 금미향은 결혼한 지 10년째, 불임으로 고통 받는 주부다. 다른 부부는 그를 기화로 각자 새 삶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미향은 아니다. “남편은 … 23평 아파트에 미향을 가두어둔 채 조금씩 늙어가게 할 것이다.” 그러던 미향이 남편의 2주 출장 동안 비로소 일탈을 시도한다. 새를 파는 상점 ‘새’에서 숙식하는 판매원으로 취업하기로 한 것. ‘새’는 남편이 찾을 수 없는 곳이다. 과연 희망의 증거일까, 포말처럼 사라질 환상일 텐가?
복선은 이렇다. 길을 잃은 미향은 “영감에 이끌리듯 눈먼 안마사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우연히도 안마사가 사라진 건물에서 상점 ‘새’의 간판을 발견”한다. 하지만 견고한 희망은 ‘어쩌다’ 이뤄지지 않는다. 종말에 한철 꿈인 듯 눈을 뜬 미향은 “남편과 육 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서 있고 만다.
세상의 잔혹성은 미향의 아파트처럼 가장 근원적인 안식처가 ‘우리’가 된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표제작 <투견>의 개고기 도매업자인 ‘아버지’도 그렇다. “개 잡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 사람잡는 사람이 되었을” 아버지의 구타와 살육은 피보호자인 ‘영미’와 ‘영식’이 그 폭력을 내면화하도록 하는 파괴력까지 지닌다. 배반적 현실 아래 자아에 대한 믿음도 없다.
현실은 왜 허무하고 절망적일까. 이유는 없어 보인다. 소녀의 아버지는 환자이고 어머니는 집을 떠났다. 동생 인영을 문고리에 매어두고 학교를 다니는 소녀는 어느 날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자살을 택한 소녀는 되뇐다. “깊은, 흐린 강물 속처럼 깊은 잠을 자게 될 거야.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 조금도 두렵지 않다. 유리눈물을 흘리는 순간, 견디기 힘든 슬픔이 목을 조여와도 … 유리눈물을 흘릴 것이다.”(<유리눈물을 흘리는 소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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