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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에 대하여>로 1997년 문단에 들어선 소설가 김숨(31)씨가 8년에 걸쳐 발표했던 10개의 단편들을 묶었다. 자신의 첫 소설집이 되는 <투견>(문학동네 펴냄)이다.
‘유폐’와 ‘우리’라는 단어가 자아내는 불온한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가로지른다. 주인공들의 삶은 거개 제한적 공간과 시간에 유폐된 삶이다. 이는 삶을 제약할 뿐 아니라, 제약한다는 사실마저 은폐하는 ‘우리’의 본질을 내포한다. 운명에 철저히 복종하거나, 주인공들이 미래를 꿈꾼대도 그건 환상일 뿐 희망은 아니다. 작가가 인식하는 현실이다.
<새>를 보자. 금미향은 결혼한 지 10년째, 불임으로 고통 받는 주부다. 다른 부부는 그를 기화로 각자 새 삶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미향은 아니다. “남편은 … 23평 아파트에 미향을 가두어둔 채 조금씩 늙어가게 할 것이다.” 그러던 미향이 남편의 2주 출장 동안 비로소 일탈을 시도한다. 새를 파는 상점 ‘새’에서 숙식하는 판매원으로 취업하기로 한 것. ‘새’는 남편이 찾을 수 없는 곳이다. 과연 희망의 증거일까, 포말처럼 사라질 환상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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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잔혹성은 미향의 아파트처럼 가장 근원적인 안식처가 ‘우리’가 된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표제작 <투견>의 개고기 도매업자인 ‘아버지’도 그렇다. “개 잡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 사람잡는 사람이 되었을” 아버지의 구타와 살육은 피보호자인 ‘영미’와 ‘영식’이 그 폭력을 내면화하도록 하는 파괴력까지 지닌다. 배반적 현실 아래 자아에 대한 믿음도 없다.
현실은 왜 허무하고 절망적일까. 이유는 없어 보인다. 소녀의 아버지는 환자이고 어머니는 집을 떠났다. 동생 인영을 문고리에 매어두고 학교를 다니는 소녀는 어느 날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자살을 택한 소녀는 되뇐다. “깊은, 흐린 강물 속처럼 깊은 잠을 자게 될 거야.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 조금도 두렵지 않다. 유리눈물을 흘리는 순간, 견디기 힘든 슬픔이 목을 조여와도 … 유리눈물을 흘릴 것이다.”(<유리눈물을 흘리는 소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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