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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절대권력, 바티칸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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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도 있다. 그의 선출 배후에는 폴란드 출신 필라델피아 추기경 존 크롤과 폴란드 출신의 카터 행정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있었다는 것. 이들이 동구권을 무너뜨리려 일을 꾸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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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이 아니다. 그의 발길이 지나고 나면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1981년 2월18일 마닐라 방문, 2년 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정권은 붕괴됐다. 그 사이에 베니뇨 아키노 피살이라는 촉매와 하이메 신 추기경의 정신적 지도가 끼어있기는 하다. 교황 방문-대중 열광-독재 몰락의 공식은 칠레, 브라질, 파라과이, 아이티, 니카라과 등에서 재현됐다.
1870년 교회국가 종말이후 유엔서 세계평화 호소까지
세계 분쟁 소용돌이에서 중재 · 타협 거치며 바티칸 권력은 점점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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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하기 100여년전인 1870년 9월20일. 이탈리아군의 포격으로 1천년 넘게 지탱했던 교회국가는 종말을 고한다. 교황은 국가를 상실했음은 물론 국제적 영향력을 잃었다. 교황 비오 9세는 사실상 수인이었다. 후임 레오 13세(1878~1903)는 좋았던 옛시절의 회복에 나서, 캐롤라인군도를 둘러싼 스페인-독일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국제무대에 다시 선다. 눈을 안으로 돌린 비오 10세(1903~1914)는 유럽 중심의 카톨릭교회를 세계적인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재임 말기 유럽 외 파송 선교사가 3만2천여명이었다.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1차 세계대전 분쟁국들 사이에서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 종전을 위한 중재는 실패하지만 바티칸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전쟁전 17개국이었던 외교관계가 27개국으로 늘어났다. 비오 11세(1922~1939)는 무솔리니와 ‘라테란 조약’을 맺어 바티칸을 ‘국가’로 만든다. 비로소 바티칸은 세계 국가의 짐을 벗고 교회의 지도기구가 된 것이다.
탁월한 정치력 발휘했던 요한 바오르2세 비중있게 다뤄
교황사 연대순으로 엮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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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과 고르바초프를 젖히고 세계사의 정점에 선 요한 바오로 2세.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기독공동체 꿈은 유럽연합으로 영글었지만 유럽의 급격한 ‘미국화’는 카톨릭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냈다.
<…바티칸 제국>이 ‘역사 속의 교황’ 이야기라면 P. G. 맥스웰-스튜어트가 지은 <교황의 역사>(박기영 옮김, 갑인공방 펴냄)는 말 그대로 연대순으로 엮은 교황사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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