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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5 15:41 수정 : 2005.04.15 15:41

세계의 절대권력, 바티칸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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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0월16일 바티칸에 111명의 추기경이 모였다. 재위 34일만에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후임을 뽑기 위해서다. 그들이 폴란드 출신의 카롤 보이티야를 새 교황(요한 바오로 2세, 1978~2005)으로 선출했을 때 그가 27년의 재위 동안 세계의 격변을 이끌어내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인 후보 둘을 두고 7차례나 무승부를 거듭한 끝에 대타로 떠오른 인물이었기 때문. 그러나 이듬해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교황은 자유노조의 불을 당겼으며 이는 동유럽 붕괴의 전주였다.

음모론도 있다. 그의 선출 배후에는 폴란드 출신 필라델피아 추기경 존 크롤과 폴란드 출신의 카터 행정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있었다는 것. 이들이 동구권을 무너뜨리려 일을 꾸몄다는 것이다.

79년 6월 보이티야를 맞은 폴란드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30만 명으로 시작한 교황의 미사는 장소를 옮겨가는 동안 수백만으로 불어났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임을 목도했다. 1년 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허용된다. 83년 두번째 방문이 있었고, 89년 의회 및 대통령 선거에서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가 승리한다. 그해 물꼬는 동독으로 터져 라이프치히에서 1천여명이 ‘월요시위’의 테이프를 끊었다. 11월에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로 번져나갔다.

그 뿐이 아니다. 그의 발길이 지나고 나면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1981년 2월18일 마닐라 방문, 2년 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정권은 붕괴됐다. 그 사이에 베니뇨 아키노 피살이라는 촉매와 하이메 신 추기경의 정신적 지도가 끼어있기는 하다. 교황 방문-대중 열광-독재 몰락의 공식은 칠레, 브라질, 파라과이, 아이티, 니카라과 등에서 재현됐다.

1870년 교회국가 종말이후 유엔서 세계평화 호소까지
세계 분쟁 소용돌이에서 중재 · 타협 거치며 바티칸 권력은 점점 커져

독일언론의 로마특파원 루트비히 링 아이펠이 지은 <세계의 절대권력, 바티칸 제국>(김수은 옮김, 열대림 펴냄)에는 2개의 드라마가 기술돼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즉위와 그에 따른 세계사적 변환 이야기가 첫번째고 1870년 비오 9세(1846~1878)때 바닥을 친 바티칸의 와신상담 100년사가 두번째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하기 100여년전인 1870년 9월20일. 이탈리아군의 포격으로 1천년 넘게 지탱했던 교회국가는 종말을 고한다. 교황은 국가를 상실했음은 물론 국제적 영향력을 잃었다. 교황 비오 9세는 사실상 수인이었다. 후임 레오 13세(1878~1903)는 좋았던 옛시절의 회복에 나서, 캐롤라인군도를 둘러싼 스페인-독일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국제무대에 다시 선다. 눈을 안으로 돌린 비오 10세(1903~1914)는 유럽 중심의 카톨릭교회를 세계적인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재임 말기 유럽 외 파송 선교사가 3만2천여명이었다. 베네딕트 15세(1914~1922)는 1차 세계대전 분쟁국들 사이에서 네트워크의 중심이 된다. 종전을 위한 중재는 실패하지만 바티칸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전쟁전 17개국이었던 외교관계가 27개국으로 늘어났다. 비오 11세(1922~1939)는 무솔리니와 ‘라테란 조약’을 맺어 바티칸을 ‘국가’로 만든다. 비로소 바티칸은 세계 국가의 짐을 벗고 교회의 지도기구가 된 것이다.


탁월한 정치력 발휘했던 요한 바오르2세 비중있게 다뤄
교황사 연대순으로 엮기도

무솔리니를 ‘하느님의 섭리가 내린 인간’으로 명명하면서 순수성을 잃는 대가를 치르지만…. 나치를 용기있게 비판했던 전임자와는 달리 비오 12세(1939~1958)는 폴란드와 독일 내의 유대인 학살에 눈을 감는다.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의 상황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요한 23세(1958~1963)는 전후 냉전시대 양 진영 모두와 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군비축소와 대화를 촉구하였고 유엔의 지도적 역할을 인정했다. 바오로 6세(1963~1978)는 처음으로 유엔을 무대로 세계평화를 호소한다. 100년 동안 교황들은 분쟁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 분쟁들은 교황의 힘을 비약적으로 키워주었던 셈이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를 젖히고 세계사의 정점에 선 요한 바오로 2세.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기독공동체 꿈은 유럽연합으로 영글었지만 유럽의 급격한 ‘미국화’는 카톨릭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냈다.

<…바티칸 제국>이 ‘역사 속의 교황’ 이야기라면 P. G. 맥스웰-스튜어트가 지은 <교황의 역사>(박기영 옮김, 갑인공방 펴냄)는 말 그대로 연대순으로 엮은 교황사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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