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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5 16:42 수정 : 2005.04.15 16:42

‘최초의 3분’스티브 와인버그

‘쉽게 읽히는 책’, ‘읽으면 명쾌하게 이해가 되는 책’이 좋은 과학책임엔 틀림없다. 나도 그런 책을 쓰려고 늘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성장시키는 책은 ‘읽을 땐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돼 몇 년을 골머리를 썩였던 책’인 경우가 많다. 머리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 아닌가!

나를 성장시킨 책들 중엔 <최초의 3분>이란 책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84년 무렵, 그때 만해도 학력고사 수석들 인터뷰가 방송사의 주요 연말 행사였다. 수석을 차지한 학생 집에 찾아가 도대체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었느냐고 집요하게 물으면서, 그들의 때묻은 책상과 빼곡한 책장에서 수석의 향기를 맡으려는 리포터의 안달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그 해 남녀 수석합격자들의 책장에서 나란히 <처음 3분간>이란 책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꿈은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 그들을 물리학자의 꿈으로 인도한 책이 바로 스티브 와인버그의 <처음 3분간>이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까만색 표지에 손바닥 만한 문고판 <처음 3분간>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에 읽기 시작했다. 전자기력과 약력에 관한 표준모형을 제창한 공로로 1979년 노벨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인 와인버그가 우주 탄생의 시나리오를 설명한 책이었다. 하지만 물리학에 관해 기초지식조차 없는 초등학생이 읽기엔 버거운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과학책 읽기’는 결국 이 책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한 수식과 알 수 없는 단어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책이 빅뱅이 일어난 뒤 처음 3분 동안 우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너무나도 빼어나게 기술한 명저라는 사실을 안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소립자를 연구하던 많은 물리학자들을 우주론이라는 분야로 뛰어들게 만든 책이라는 어느 선배의 설명에 다시금 도전했던 그제야 비로소 나는 이 책에서 우주탄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책이 절판돼 한동안 물리학과 후배들에게 권할 수 없어 섭섭했는데, 얼마 전 초판 발행(1977년) 이후 변화한 우주론을 반영한 1994년 개정증보판이 <최초의 3분>이란 새로운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와인버그는 이 책에서 빅뱅 이후 최초 100분의 1초에서부터 처음 3분을 6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초기 우주론에 대한 다양한 의미와 논점을 짚어내고 있다. 특히 개정증보판 후기에는 1980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인플레이션’이란 개념에 대한 설명과 1990년대 수행된 초기 우주론을 검증하기 위한 흥미로운 실험들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어,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면에서도 최신 서적 못지 않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의 성질만 이해하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환원주의자의 대표주자인 와인버그의 책을 읽고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는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전체는 결코 부분의 합이 아니며 기본입자들간의 네트워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 복잡계 과학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르지 않고서는 산을 넘을 수 없는 것처럼, 고전이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우리를 성장시키는, 그래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최초의 3분>은 내게 오랫동안 ‘넘어야할 산’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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