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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에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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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분야를 다룬 책은 대부분 교재다. 인쇄 과정, 원리, 특성을 목에 힘주고 설명한다. <인쇄에 미쳐>(우치자와 준코 그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는 조~금 다르다.
지은이 마츠다 테츠오는 책동네에서 30년 넘게 구른 편집자. 소년기 ‘인쇄 페티시즘’을 경험한 그는 예순을 바라보는 즈음에 인쇄소를 순례한다. 동행자는 여성 삽화가. 인쇄의 ‘인’자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쇄의 마력에 흠뻑 빠진 자가 뒤늦게 쓴 연서다.
앞에 내세운 활판인쇄가 압권이다. 추억 어린 올록볼록 활판인쇄가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는 소식은 그를 넋나가게 할 정도다. 하여 머리도 손도 둔한 나이에 문선, 조판 실습에 나선다. 인쇄소 안의 기계소리, 잉크냄새, 쌓여있는 종이들, 기술자들의 날렵한 움직임 등은 그한테는 심포니 음악이다. 그러므로 ‘짤가닥 짤가닥’ 문선공들이 활자를 고르며 내는 소리는 리드믹하게 인각되지 않겠는가. 전산방식보다 개판이 더 빠르고 쉽다고 표나게 내세우는 것은 향수. 약용 설명서가 활판으로 인쇄된다는 사실은 기쁨에 속한다. 자칫 잘못 인쇄되거나 글자가 빠질 경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은 ‘대단한’ 발견이다. 수동사식, 콜로타이프 인쇄 역시 향수의 영역. 샤켄의 마지막 수동사식기 PAVP-KY를 조작하면서 들은 ‘쿠르르르 찰칵’ 소리, 콜로타이프를 운위하면서 떠올리는 1950~60년대 졸업앨범이 그렇다.
교재성 책과 조~금 다른 것은 여기까지. 그 다음은 현재 주로 이용되는 오프셋, 특수인쇄, 그라비아 인쇄를 숨가쁘게 설명한다. 독자 역시 설명과 그림으로 눈을 옮기며 따라가면 그만이다.
그는 활판, 전산사식, 수동사식이 나름대로 장점과 특성이 있음에도 DTP(데스크탑퍼블리싱)에 밀려 사라지는 현실이 애처롭다. 눌러찍은 문자가 힘있고 선명하지만 손님들은 이를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말은 편집자의 입을 빈 그의 말이다. 조판소프트웨어를 출판·인쇄업체가 아닌 컴퓨터 업체가 만들면서 발생한, 이상한 일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자간에 대해 말하자면, 글자들이 겹치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소프트업체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더불어 활판은 활자크기, 인테르, 쿼드 등 규격이 같아서 기술자들의 호환이 가능한데 디지털 쪽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안타까움에 속한다.
이처럼 표정이 풍부한 이 인쇄교재는 어떻게 인쇄했을까. 본문은 DTP 오프셋 2도인쇄, 표지는 4도 오프셋 인쇄이고 큰 제목은 먹박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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