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문자로 추측할 정도
중국인은 쉬운 알파벳에 경이 과연 실제 존재했던 인물인지 신화 속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인들의 글자인 ‘한자’를 처음 만든 이는 창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의 초상을 보면 창힐은 눈이 4개였던 네눈박이였다. 일설에는 한자란 창힐이 새 등의 짐승 발자국을 보고 창안한 글자라고 하고, 다른 편에서는 주역의 팔괘나 줄을 꼬아 표시를 하는 결승에서 한자가 유래했다고도 한다. 그 기원이 어떻든, 중국인들은 한자가 발명된 이후 한자에 유배되어 왔다. 글자 하나하나가 뜻을 가지는 표의문자는 축복인 동시에 억압이었던 것이다. 그 뜻만 알면 오류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자는 뛰어났지만, 최소 수천자는 외워야 기본 소통이 되는 탓에 사용자들에게는 보통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한자를 만든 네눈박이 창힐 같은 위대한 신화적 존재라면 몰라도 평범한 두눈박이 보통 사람들은 한자를 능란하게 다루기 버거웠고, 이후 수천년 동안 엄청난 고생을 강요당했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 교수인 다케다 마사야의 책 〈창힐의 향연〉은 이 한자라는 유산을 놓고 중국인들이 펼쳐왔던 애증의 드라마를 다룬 책이다. 한자의 폐단을 놓고 중국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한자회의파’의 전통과 한자 개조의 노력, 그리고 이 독특한 문자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다루면서 인간과 문자의 관계가 빚어낸 풍경을 유쾌한 역사의 막간극을 보여주듯 서술하고 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중국과 서양이 서로의 문자에 보인 관심에 대해서다. 서양인들은 정작 중국인들은 가장 난감해했던 한자의 특성인 ‘표의성’에 매혹됐다. 글자만 알면 뜻을 소통할 수 있는 한자를 바벨탑이 무너진 뒤 사람들의 언어가 다양해지면서 사라진 태초의 언어, 곧 ‘아담의 언어’에 필적하는 언어로 본 것이다. 또한 음의 높낮이가 있는 중국어 특유의 ‘성조’도 그들에겐 관심사였다. 한자야말로 유토피아의 문자로 추측할 정도였다. 반면 중국인들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라틴 알파벳의 편리함에 경이로워했다. 지역에 따라 발음이 바뀌는 중국어의 근본적 문제를 극복하고 있는 놀라운 문자를 본 것이다. 서양 표음문자를 동경한 중국인들은 이후 수많은 문자 개조 시도에 나섰다. 바로 ‘두눈박이 창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문자개혁의 결정판이 바로 20세기 새롭게 바뀐 지금 중국의 ‘한어병음’ 방안이다. 마오쩌둥의 교시에 따라 복잡한 글꼴을 간결하게 바꾸고 라틴 자모를 이용해 표음방식을 연구해 만들어낸 이 한어병음방안도 그 종착역은 아닐 것이다. 한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자문화권 주변 국가들 역시 이처럼 계속되는 ‘한자의 향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없는 창힐의 두 눈은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그에 맞서는 두눈박이 창힐들은 이제 무엇을 보려 하는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