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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국립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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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는 선조 40년 1607년부터 순조 11년 1811년까지 총 12번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던 사절단의 이름이다. 이 책에 기술된 조선 통신사의 성격을 보면 초기에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귀환시키는 ‘쇄환사’의 역할이 주 임무였는데, 점점 쇄환사로서의 의미가 약해지다가 4회 무렵부터는 도쿠가와 막부의 새로운 쇼군 취임을 축하하고 일본의 국정을 탐색하며 양국의 우호 유지를 위한 ‘통신사’의 역할로 바뀌었다.
이 책은 통신사의 구성과 준비 과정, 일본에서의 환영 준비와 접대 내용, 일본에서의 여정과 머물렀던 곳에서의 환대 내용, 주고 받은 선물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조선 통신사는 평화 · 우호 사절단으로서, 전쟁으로 생긴 한-일 양국의 불신과 갈등을 치유하고 조선의 문물을 일본에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조선의 서예와 학문과 예술 분야의 교류가 일본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갈등을 치유하려는 양국교사들에 감탄하면서도 몇 가지 궁금증이 남는다
왜 우리만 사절을 보냈을까 조선의 외교적 위상은 이전보다 격하된 건 아닌가
이 책은 히로시마 현의 교직원 조합과 전교조 대구 지부가 증폭되어 가는 양국의 역사 갈등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교사들이 스스로 나서서 공동의 역사책을 펴낸 일은 대단히 의미 있는 시도다. 조선통신사 파견의 배경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도저히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한국 쪽에서 “이러면 친일파가 됩니다”하니까 히로시마 쪽에서 “우리들은 친한파가 됩니다”라고 응수해 한바탕 폭소가 터지고 토론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는 후일담은 이들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작업을 했는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다.
이들의 소중한 노고에 감탄하며 이 책을 읽는 동안 책의 내용을 떠나 나에게 몇 가지 의문점이 찾아왔다. 첫째, 400명에서 500여명에 가까운 대규모 사절단의 파견이 왜 우리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조선 쪽에나 일본 쪽에나 그 당시 경제형편으로는 막대한 국고를 소비하는 일이며 실제로 후반기에는 일본 내부에서도 통신사 접대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어나서 파견 요청이 폐지되었는데 조선의 조정에서는 파견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둘째, 일본은 쇼군보다 상위에 ‘천황’이 자리 잡고 있는데 조선의 국왕이 쇼군을 상대함으로서 외교적으로 위상이 격하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조선 국왕과의 칙서 교환을 이유로 조선통신사를 조공 사절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런 의전관계에 대해 조선의 조정에서는 어떠한 입장이었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졌다.
셋째, 통신사의 역할이 취임 축하만이 아니라 문화교류와 정세 탐지에도 있다고 했는데 보고서 속에 기술된 일본 국내의 정세 탐지는 피상적이고 문화사절로서의 역할도 시나 서화를 교류한 기록들 외에 더 깊이 있는 문화적 탐색에 대한 언급은 적으며 그 부문에 대한 조선 정부의 입장도 불분명한 것 같다는 점이 궁금해졌다.
이런 의문들을 통해 나는 조선통신사에 대해 좀더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양국 외교관계에서 냉혹한 현실을 살펴보고, 통신사가 일본 쪽에 제공한 이익과 불이익 그리고 조선 쪽에 제공한 이익과 불이익을 면밀히 따져 보고 싶어졌다. 역사에 문외한인 나에게 이런 몇 가지 숙제를 던져주신 양국의 교사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이들의 노력이 한번의 시도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계속되다 보면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에도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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