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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2 18:39 수정 : 2005.06.02 18:39

김경욱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

채팅은 관계 피하기 위한 수단
낯선 문법으로 소통 불능 그려

젊은 감각과 새로운 문법으로 무장한 소설 두 권이 나왔다. 김경욱(34)씨의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문학과지성사)와 배수아(40)씨의 장편소설 <당나귀들>(이룸)이 그것이다. 두 책은 한국 소설의 지배적 전통인 사실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고, 낯설지만 매력적인 자기 나름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장국영이 죽었다고?>

이 소설집의 표제작은 2003년 만우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콩 배우 장국영의 죽음을 대하는 네티즌의 반응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은 부친의 사업 실패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된 뒤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소일하는 사내.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겨우 존재할 수 있다”(9쪽)거나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었다”(25쪽)고 선언하는 그가 채팅에 열중하는 것을 관계 열망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에게 채팅은 진정한 관계를 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병을 막기 위해 미리 처방하는 백신 같은 것 말이다.

“관계하지 않음으로 존재한다”


이혼남인 그가 자칭 ‘이혼녀’라는 상대와 채팅을 하다가 장국영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이혼녀와 함께 장국영에 관한 추억을 나누던 그는 이혼녀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오프라인 미팅을 요청하고, 상대가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 역시 상대가 지정한 옷차림을 한 채 나간다(이 과정에서 그는 피시방 사장에게 자리를 비울 핑계를 대느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하는데, 이 거짓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장국영이라는 대중문화의 아이콘 또는 가상의 존재가 그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과 똑같은 옷차림을 한 50명 남짓의 남자들이 극장 매표구 앞에 줄을 서 기다리다가는 자기 차례가 되면 표를 사지 않고 돌아서서 제 갈 길로 가 버리는 ‘플래시몹’이다. 의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전 인지도 하지 못했던 행위에 동참하면서 주인공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활력”(34)을 느꼈다고 토로하거니와, 그것이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복무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더욱 흥분시켰을 것”(34~35쪽)이라고 자가 진단하는 데에서 작가가 표방하는 새로운 감수성과 세계관은 뚜렷이 드러난다.

▲ 70년대산 작가군의 선두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경욱씨가 네 번째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내놓았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아무런 생산적이거나 의미 있는 결실을 맺지 못하는, 껍데기뿐인 관계의 황폐한 불모성은 <당신의 수상한 근황>에서 한층 섬뜩하게 그려진다. 보험 사기를 적발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살아 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 것’(45쪽)을 신조로 삼아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가 어느 날 자원해서 ‘사건’을 맡는데, 대학 시절의 첫사랑 여자가 청구한 보험금 건이 그것이다. 그는 동정을 호소하는 옛 애인의 암시를 묵살한 채 여자의 기도를 좌절시킨다. 비정(非情)은 비정으로써 보답 받는다. 운전 도중 걸려 온 전화를 받으려던 그는 차가 뒤집히는 바람에 거꾸로 매달리는 꼴이 된다. 전화는 취직 준비를 위한 학원 등록비를 재촉하는 여동생의 것. 이어서 보일러 교체에 필요한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 온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받은 두 통의 전화 모두 그가 겪고 있는 당장의 곤경과 뿌리깊은 고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119에 구조 요청을 한 그는 하릴없이 손톱으로 복권을 긁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그렇지만 말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희미한 어떤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것은 숨소리였다. 어느 먼 곳으로부터 아득히 들려오는 북소리처럼 뭔가를 애써 호소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것은 딸아이의 숨소리였을 것이다. 말이 되지 못하고 소리에 불과한 웅얼거림이었다.(…)전화기에 대고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는 것은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소리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65쪽)

‘껍데기 관계’ 비정에 비정으로

여기에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주인공의 딸이란 6년 전 어미의 뱃속에서 ‘범죄의 냄새’가 나는 교통사고를 겪은 뒤 태어나 여태 언어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다. 비정에 비정이 덧칠해질 따름인 허위의 관계에 지친 주인공이 “누군가 곁에 있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문득 생각”(64)하는 순간 걸려 온 딸의 전화는 슬프고도 감동적이다. 언어 장애라는 불리한 여건을 딛고서도 소통을 시도하는 딸의 전화는 형식적이고 실용적이며 일방적이기까지 한 여동생과 아버지의 전화와 대비되어,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가를 말없이 웅변하는 듯하다.

이밖에도 롤랑 바르트의 에세이 <사랑의 단상>, 그리고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사랑의 에세이>를 떠오르게 하는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존 오스번의 희곡 제목을 차용해 현실과 허구가 서로를 흉내내는 양상을 포착한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그리고 <하멜 표류기>를 재해석·재구성한 <나가사키여 안녕> 등은 작가 김경욱씨가 새로운 형식과 발성법을 찾고자 부단히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 배수아 장편 <당나귀들>
소설 3요소 빠진 ‘독후감 소설’
서사의 파편·문장 울림 ‘진동’

<당나귀들>

8개의 장으로 나뉜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독후감과 에세이의 집합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작가 자신으로 볼 수 있는 주인공 ‘나’가 독일에서 지낼 때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그리고 한국에서 만난 독일 친구들과의 일화가 ‘소설적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뚜렷한 서사적 흐름을 구성하지 못한 채 파편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을 따름이다. 대신 작가와 언어의 본질, 레즈비언의 사랑, 채식주의의 어려움, 우울증에 대한 공포 등에 관한 성찰이 존 쿳시, 조셉 콘래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밀란 쿤데라 등의 책에 대한 독후감과 뒤섞여 있다.

소설이란 모름지기 사건과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독자라면 이 책을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 관한 그런 통념을 버리고 유연한 태도로 책을 대한다면 새롭고도 흥미로운 경험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계몽의 시대가 도래했어야 할 바로 그 적절한 순간에 굶주림의 시대에서 천박의 시대로 바로 월반해 버린 우리의 역사”(25쪽)라거나 “감정이나 대상 세계가 충분히 분화되기 이전에 미리 완성되어 버린 언어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 있으나 ‘배운 언어’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그런 세상”(175쪽)과 같은 울림 깊은 문장들은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보상’의 일부이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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