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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9 17:13 수정 : 2005.01.19 17:13

삼십여 년 전에 성철 큰스님을 백련암에서 처음 친견하고 “큰스님을 뵈온 기념으로 평생 마음에 새겨 간직할 좌우명을 하나 주십시오” 하니,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부처님께 만 번 절을 하고 오면 한 마디 일러줄 것이다”라고 하셨다.

하루 낮밤 동안 24시간을 죽을 고생을 하고 큰스님을 뵈오니, “네 낯짝을 보니 내 말을 평생 지킬 놈이 아니다. 좌우명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그냥 가거라” 하셨다. 잘 하지도 못한 절이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면서 만 번 절을 했는데 그냥 가기는 억울해서 “스님께서 꼭 좌우명을 주셔야 한다”고 졸랐다. 한참을 화등잔 같은 눈으로 쏘아보시더니 “그럼, 속이지 마라”고 하셨다.

그 좌우명을 듣는 순간 나는 하늘과 땅이 맞붙어버리는 실망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실망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백련암 일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서너 달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속이지 마라” 하시던 큰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그러면 그렇지! 남을 속이지 말라가 아니라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하면 큰스님께서 얼마나 무서운 좌우명을 주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쳤다.

그런 인연으로 큰스님에게 화두를 받고 참선을 하게 되고 마침내 큰스님 문하로 출가하게 되었다.

큰스님께서 국정자문위원으로 임명되셨으나 회의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국정자문위원회 사무처장님이 오셔서 “국정자문위원님들 휘호를 받아서 서첩으로 만들어 기념하고자 합니다. 큰스님께서도 다른 일은 몰라도 이 일만은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는 간곡한 부탁에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는 글귀를 써주셨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나는 어떤 당혹감과 황홀함에 휩싸였다. ‘아! 그때 큰스님께서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 바로 말씀해 주셨다면 내가 스님이 되었을까’ 하는 의심에 빠졌다가 그 감정에서 홀연히 벗어나 그때 스님께서 “속이지 말라” 하셨지만 그 뜻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곳에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에 황홀하였던 것이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마음[自心]은 때 묻고 욕심에 찬 자기 마음이 아니라 바로 참되고 착하고 깨끗한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고 당부하고 계신 줄 안다. 큰스님께서 당부한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도 큰스님께서 주신 좌우명을 못 지키며 살고 있다.


원택 스님 /겁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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