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환·김상근 목사 뒤이어 목회
사회적 영성지키는 보루
상처받은 자들의 쉼터로 6·25 직후 남하한 피난민들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는 이렇게 십자가를 메고 세상에 나아갔다. 한국유리 회장이던 최태섭 장로 등이 당시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이곳에 교회를 설립한 것부터 힘든 이들과 함께 껴안고 살아가자는 뜻이었다. 문동환, 김상근, 이해동 목사 등의 뒤를 이어 이 교회의 담임을 맡은 권오성(51) 목사는 인왕산의 품 고요한 방에서 감미로운 찬송을 듣고 있었다.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서강대 재학 시절 자유서강 사건으로 다시 2년 동안 옥고를 치르고 1984년 불과 31살의 젊은 나이로 수도교회의 담임을 맡은 이후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그인데도 오히려 운동가보다는 영성가의 인상이 느껴진다. “외부에서 충격이 오면 우린 즉각 내 식으로 반응하게 마련이지요. 그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식으로 반응하는 게 그리스도인이지요.” 늘 독재 권력에 상처받고 찢긴 자들의 도피처이자 쉼터를 자처해 왔음에도 교회가 상처받기보다는 치유자의 구실을 해 온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회적 영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정신지체 어린이 유치원 효시
부모를 위한 치유프로그램도
그마음 계곡따라 흘러 도심으로
수도교회는 민주화운동의 산실만이 아니라 정신지체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의 효시이기도 하다. 80년대 초 집 안에만 갇혀 있던 정신지체 장애아들을 위한 유치원학교를 교회 안에 설립했다. 권 목사의 아내 김정숙씨가 교장으로 있는 지금의 ‘사랑의 학교’다. 김씨는 88~94년 남편인 권 목사가 독일에서 목회하는 동안 특수교육을 공부했다. 3~6살의 정신지체 장애아 36명을 돌보는 교사만도 12명인 사랑의 학교는 장애아만이 아니라 그들의 형제자매와 부모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배려로 유명하다. 유치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30년 전 마을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도 만들어 운영했던 교회는 이 일대에 유아들이 급감하자 유치원을 닫는 대신 환경운동연합과 공동으로 교회에서 3월부터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기로 했다. 교회 안에 교육관을 지을 때부터 마을 사람들을 위해 건물을 쓰자는 취지를 살리기 시작한 셈이다. 여신도들은 주일 예배 뒤엔 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운동을 벌인다. 마을 주민들과 헌옷을 바꿔 입고, 수익금은 경남 남해의 한 노인복지시설에 보낸다. 교인들이 사랑의 봉사단이란 소그룹을 만들어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기도 한다. 지난해 9월부터 100일 동안 매일 새벽 경제난으로 어렵고 힘든 교인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는 권 목사 뒤로 인왕산 품이 아늑하다. 교회와 인왕산 순환도로 사이엔 벽도 없다. 대신 벤치가 놓여 있다. 지역민과 ‘함께’ 어울리려는 교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계곡물처럼 도심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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