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1 15:55
수정 : 2005.01.21 15:55
만화 ‘…가족관찰기’낸 선현경씨
결혼하기 전에는 누구나 이성에 대해 환상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지난 2003년 직접 쓰고 그린 어린이책 <이모의 결혼식>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일러스트레이터 겸 동화작가 선현경(34)씨도 그랬다. 아버지, 오빠같은 집안 남자들의 모습을 그토록 오랫동안 보아왔으면서도 자신의 남편될 사람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년을 연애했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남자를 몰랐던 것이다. 모든 신부들이 그랬듯이.
몰랐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아이’에 대해서도 몰랐다. 어째서 주변에 널려있는 아이들을 보고 직감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아이만은 딴 아이들과 절대 다를거라 섣불리 믿었던 것인지. 그렇게 결혼해서 비로소 남자를 알았고, 출산한 뒤 제대로 아이를 알게됐다.
여기까지는 다른 모든 아내와 엄마들과 똑같았다. 선씨는, 결혼 후 알게 된 이런 ‘생활의 발견’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어느날 남편이 제안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너 만화 그릴래?”
미술을 전공했어도 그때까지 선씨는 평생 만화를 그려본 적도, 만화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 적도 없었다. 젖먹이 딸린 애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듯해 우울하던 터였는데, 그 한마디가 선씨의 마음을 당겼다. 겁도 없이 만화를 시작했고, 남편은 ‘사부’가 되어 용기를 북돋아줬다. 남편이 그린 만화를 보기만하던 만화가의 아내는 그렇게 자신도 만화가가 됐다. 독특한 유머 감각과 팔방미인 활동으로 인기높은 만화가 이우일(36)씨가 바로 선씨의 남편이다.
만화의 소재는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서로 지지고 볶고 사는 점에서는 평범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독특한 선씨네 식구들 이야기가 바로 만화의 소재였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남편과 딸아이가 보여주는 온갖 ‘엽기발랄’한 에피소드들이 다 한편의 시트콤이요, 만화였다. 선씨는 자신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만화 <가족관찰기>를 한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예상 이상으로 독자들은 이 재미난 집안 이야기에 배를 잡고 열광했다. 의자에 앉은 채 몸은 움직이지 않고 방바닥에 있는 책을 집어들으려다 갈비뼈가 부러진 남편 이우일씨의 이야기, 운전 안하는 아빠 때문에 운전은 여자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딸 은서 이야기, 장난감이며 동화책을 딸보다 더 좋아해서 딸 핑계대고 장난감을 사서 자기가 갖고 노는 엄마의 이야기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웃음짓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느새 남편은 만화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강력하게’ 검열하기 시작했고, 만화 연재는 어느덧 햇수로 7년째에 접어들 정도로 장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만화를 통해 선씨는 용기를 얻어 늘 꿈꿔오던 동화작가에 도전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선씨의 새 책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는 바로 이 연재 만화에서 고갱이를 뽑고 새로 쓴 글을 보태 묶은 것이다. 선씨는 연재할 때는 오히려 홀가분했는데 막상 책으로 내고 나니 오히려 영 쑥스럽고 창피스럽다고 한다. 이렇게 가족 사는 모습을 다 보여줘도 되는지, 책으로까지 내도 될지 몰라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책으로 나온 덕에 이제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유쾌한 가족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참, 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재미를 더해주는 일원 하나를 미처 소개 못했다. 고양이 카프카도 이집 식구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