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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1 17:37 수정 : 2005.01.21 17:37

영문학자 태혜숙 교수(대구가톨릭대)의 화두는 ‘한국에서 여성 영문학자로 산다는 것’으로 요약될 법하다. 지난 2001년에 낸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이어 이번 책에서도 제목으로 쓰인 ‘탈식민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태 교수의 지향이 요약되어 있다. ‘탈식민 페미니즘’이란 말하자면 과거 식민주의를 겪었고 지금은 신식민지화하고 있는 제3세계의 현실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는 이론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두 책 모두에서 태 교수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인도 출신의 미국 여성 문학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의 논지다. 스피박은 1976년 자크 데리다의 〈그래머톨로지〉를 영역 소개함으로써 영어권에 해체론을 들여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지만, 그는 그 뒤 예일 학파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유행한 해체론이 지배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적 경향으로 나아갔다며 거리를 둔다.

스피박은 ‘주체’ ‘노동’ ‘재현’처럼, 미국식 해체론이 비웃거나 매도하는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그것들이 남성중심·이성중심·서구중심의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에 이용되면서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탈식민 페미니즘 기획의 출발점 또한 그것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스피박은 제3세계 여성들의 ‘몸의 글쓰기’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몸의 글쓰기’란 신식민주의의 모순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제3세계 여성들의 삶의 직접성과 치열성이 드러난 글쓰기를 가리킨다.

스피박의 논지를 이어받은 태 교수는 이 책에서 중국계 미국 이민 2세 여성 작가인 맥신 홍 킹스턴의 〈여성 전사〉와 한국계 미국 이민 1.5세 여성 작가인 차학경의 〈딕테〉를 분석해 보인다. 특히 〈딕테〉는 기존 텍스트의 인용, 청원서, 사진, 지도, 도표, 영화대본 등을 다양하게 동원하는 혼종의 글쓰기를 통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neither/nor) 처지에 놓인 미국 내 소수자의 처지를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글쓰기의 형식에서도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태 교수의 이번 책에서 또한 주목되는 대목은 페미니즘과 민족주의의 관계에 관한 통찰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이 민족주의 비판에 주력하는 데 대해 태 교수는 회의적이다. “억압적인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신화를 비판한다는 것이 반식민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 자체를 너무 쉽게 무시하는 데로 가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세계화 또는 지구화란 미국 등 강대국의 국가주의를 바탕 삼은 신식민주의에 지나지 않는 만큼 “반제국주의·반지구화의 거점으로서 민족은 고수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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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혜숙 교수는 신식민화하고 있는 제3세계 주변부 여성들의 ‘몸으로 글쓰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한국에 와서 노동하다 노말헥산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를 앓고 있는 타이 여성 노동자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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