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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6 19:41 수정 : 2005.01.26 19:41

벗이라 부르겠다!

가끔 폼 잡고 성경책을 펼칠라치면 의아해하는 표정들이다. 그동안 알려지기를 성경보다 불경이나 ‘소녀경’을 더 많이 보게 생겼다나 어쨌다나. 입심거리로 따지면 성경만한 밑천도 없는데 왜들 그러시나. 한글을 깨친 뒤 그대는 죽고 못살던 〈선데이서울〉 따위 멀리하고 오로지 성경책을 꿰고 살았다. 목침 대신 성경책을 베개 삼아 잠도 엄청 잔 몸이시다. 성경책에 흘린 침만으로도 서너 바가지가 다 뭐야. 잠자다 흘린 침으로 낱장이 붙어서 착착 넘기지를 못할 지경이다.

쌈박질로 도배된 구약성경은 김일 박치기 좋아하던 시절이나 솔깃했지 세상사 눈뜨고부턴 사랑행진의 앞머리꾼 예수 이야기가 좋았다. 가난한 사람들 편들기를 하다가 몰매를 맞고, 예비군 훈련도 안 마쳤을 나이에 저승 구경을 했다는 신약성경의 예수 스토리. 시종 눈물겨웠다. 무엇보다 요한복음 15장 15절은 나에게 있어 덜미잡이나 같았다. “벗이라 부르겠다!”

스승 예수의 야자타임 선언. 평등의 선언이요 평화의 선언이렷다.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 등에 대고 최근 이렇게 말했다. “철천지 웬수라 부르겠다!” 참말 야물기도 하시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끝은 창대하리라? 요런 구절들 좋아하는 분들이 갑절로 많다. 하지만 꿈 깨라 말해주고 싶다.

자장면집 주인장도 좋아해서 벽에 붙여놓는 부적이지만, 끝이 창대해 보았자 죽을 때는 빈손이다. 초치는 소리가 아니라. 성서해석상 부귀영화 만사형통의 약속문건도 아니고 말이다.

“벗이라 부르겠다!” 이런 말씀 강조했다간 종교 사업이 잘 될 턱이 없다. 그래서 난 담임목사직을 그만두었는지 모른다. 나는 영원불변할 친구를 소개했는데 교인들은 경제적 후원자를 원했다. 벗이라 부르겠다! 선생님 겸손 앞에 눈시울이 뜨겁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 도도하게 권위 부리고 거들먹거리는 자들은 정말 재수 없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야윈 어깻죽지 내줄 친구 예수가, 무지무지 그립다.

임의진 목사 /전 남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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