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8 16:49
수정 : 2005.01.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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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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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를 통해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전설이나 의식들안에 닮은꼴의 원형질이나 제의적 특성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신화가 갖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신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문학이나 영화 따위 안에 존재하는 의미들을 파헤칠 때 신화가 유용한 분석의 틀이 되는 까닭이다.
책은 그리스 신화를 거푸집삼아 시대를 대표했던 영화를 재조형한다. 이는 영화를 통해 그리스 신화의 현대적 의미를 짚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외국어대 그리스-발칸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화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먼저 권력과 명예, 사랑의 무게를 가늠한다. 이들이야말로 삶의 열쇠말이자 신화나 영화가 대개 이를 중심으로 엮이기 때문일 터다. 한 몸인 양 아름답고 시기도 많은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미의 제왕 자리를 두고 다툰다. 우열을 가려야하는 고달픈 숙명을 떠안은 이는 트로이의 양치기 파리스다. 누구를 선택하든 저주는 내려지게 마련이다. 파리스는 여인의 사랑을 얻어주겠다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지목했고, 덕분에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올 수 있었다. 바로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자 파리스가 명예와 권력을 잃고 파멸한 동인이다. 적군 그리스를 헤라와 아테나가 도왔음은 물론이다.
영화 안의 수많은 선택이 이 구조 안에서 이뤄진다는 걸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동방불패>의 동방불패는 불패(명예)의 무술비법 ‘규화보전’을 선택한 대신 사랑을 잃는다. 마이클(<대부2>)이 형제를 죽여야 하고 아내와 결별한 것도 권력을 선택한 기회비용인 셈이다. 책은 나아가 <쉬리> <해피 투게더> 따위와 신화를 견줘 현실에서 변주되는 여러 사랑을 살피기도 한다.
비교적 단순명쾌한 원형 비평과 함께 신화의 가치를 되새김하는 작업도 무게 있게 이뤄진다. 샘 멘데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에서 철저하게 현실적·물욕적인 주인공들을 비추며 상상이 부재한 세계를 통렬히 꼬집는다. 신화를 잃은 채 드러난 것만 믿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증명과 논리를 위한 표현언어인 로고스(Logos)의 대척점에 신화(Myth)의 어원인 미토스(Mythos), 즉 표현 아래 감춰진 것을 꿈꾸는 언어가 있음을 책은 되짚고 있다. 현실 세계가 잃어버린 생명력을 신화가 불어넣는다고 말하는 이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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