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8 19:27
수정 : 2005.01.28 19:27
김기택(48)씨가 네 번째 시집 <소>(문학과지성사)를 내놓았다.
김기택 시의 창작 원리가 관찰과 발견에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남들이 범상하게 보아 넘기는 사물과 현상을 놀라운 집중력으로써 들여다보고, 그 결과 얻어진 낯선 풍경과 의미를 즐겨 시로 노래해 왔다. 김기택 시의 특장이라 할 그런 면모는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실뿌리에서 잔가지까지 네 몸 안에 나 있는 모든 길은/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 구불구불한 길은/뿌리나 가지나 잎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나가는 너의 길고 고단한 길은”(<우글우글하구나 나무여>)
이즈음의 김기택 시가 단순한 관찰과 기록에 머물지 않고 도시와 문명의 불모성을 고발하는 쪽으로 나아왔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집에서도 아파트 10층 창문까지 기어 올라온 송충이(<유리창의 송충이>)라든가 불 밝힌 빌딩 창에 부딪쳐 죽은 나방들(<그들의 춘투>)은 문명의 거짓과 폭력을 생생히 증언하는 존재들이다. 벌레나 동식물들만이 아니다. 벽으로 변한 승객들에 갇혀 만원 전동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할머니(<벽>)나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한가운데를 위태롭게 건너는 할머니(<무단 횡단>)는 인간 역시 문명의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문명에 대한 비판은 그 문명이 억누르거나 소멸시킨 자연적 가치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초기 시에서 주로 동물의 형태와 동작을 꼼꼼히 묘사했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풍성한 식물적 이미지를 선보이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방금 딴 사과가 가득한 상자를 들고/사과들이 데굴데굴 굴러나오는 커다란 웃음을 웃으며//그녀는 서류 뭉치를 나르고 있었다/어떻게 기억해냈을까 고층 빌딩 사무실 안에서/저 푸르면서도 발그레한 웃음의 빛깔을”(<어떻게 기억해냈을까> 1·2연)
<초록이 세상을 덮는다>라는 시는 좀 더 직접적·적극적이다. 이 시에 따르면, 도시는 표면적으로는 수직과 콘크리트로 뒤발되었지만, 그 안에서 초록은 “직선과 사각에 밀려 꺼졌다가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 같은 초록의 부활을 두고 시인은 “저돌적인 고요”라 표현하고 있는데, 광물성을 이기는 식물성의 힘은 고요하지만 강력하다는 것이 시인의 낙관적인 전언인 듯하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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