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에서는 ‘청춘’을 노래하건만, 막상 소설집에서는 청춘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얄궂은 노릇이다. 펑퍼짐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아니면 벌써 손주까지 본 노인들 일색. 청춘은 다만 지난 시절의 아린 추억으로만 되새겨질 따름이다.
표제작의 주인공 역시 나이 일흔에 가까운 손 여사와 이 영감. 손 여사의 효자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 <죽어도 좋아>를 함께 본다. 노인들의 성을 다룬 이 영화에 주제가처럼 삽입된 노래가 바로 ‘청춘가’다. 청춘을 떠나보낸 뒤에,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 “젊은 것 늙은 것이 늙은인디…”라는 손 여사의 탄식은 이 소설과 소설집의 주제의식을 압축하고 있다 할 것이다.
표제작에서 당위로서 제시된 노년의 성은 <주유남해>와 <꽃 피는 봄이 오면>에서는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 이혼한 아들이 맡긴 손주들 때문에 석 달째 방사를 치르지 못해 공연히 심통이 난 <주유남해>의 주인공 오씨. 부부 단둘이 나선 야간 어로 작업 도중 기관이 멈추자 문제를 해결한다며 차가운 밤바다 속으로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는다. 깨어 보니 알몸인 채 누워 있는 자신을 역시 알몸인 부인 세포댁이 이불처럼 덮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몸을 덥히겠다는 뜻이겠지만, 정신이 돌아온 오씨에게야 하늘이 내린 기회가 따로 없다.
|
||||
작가가 중·노년층 인물들과 함께 여성 주인공들을 즐겨 내세운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두세 편의 예외를 제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대부분 여성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온 세 딸을 주인공 삼은 <깊고 푸른 강>이 대표적이다. 딸이라고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으며 박대 받았던 자신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건만 아들 둘은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현실을 두고 그들은 듣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원망처럼 말하는 것이다. “아부지. 밥 먹여서 아들들 참 잘 키워놨소.”
<복국 끓이는 여자>에 오면 작가가 생각하는 여성성의 정체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주인공은 시장 귀퉁이의 허름한 복국집 주인인 남해댁. 그는 어느 날 형편없는 몰골로 가게에 들이닥쳐 쓰러진 젊은 러시아 여성을 헌신적으로 돌본다. 자신의 장기인 복국을 끓여 먹이며,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방의 여자에게 간곡하게 하는 말(“무슨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고 어제 무슨 일이 났는가도 모르겄지만 어쨌든 몸 간수 잘 하구. 술 너무 많이 먹지 말구, 얼른 돌아가서 잘 살어. 알었지?”)은 남해댁의 여성성이 바로 모성성임을 말해 준다. 지난 시절 수배자의 처지가 된 학생 출신 노동운동가를 제 집에 숨겨 주었던 <바위 끝 새>의 여주인공 역시 남해댁과 함께 ‘여성=모성’의 등식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