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무쇠솥 신앙’ 설파” “이제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참 자유인답게 사십시오. 그리고 사람들 앞의 걸림돌을 치워주고 디딤돌이 되어주십시오.” “아멘. 주님. 그리 하겠습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걷는다해도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를 위해 생수를 긷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건네고, 먼저 섬기며 살겠습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3가 85 청파교회. 주일 예배의 마지막에 담임 김기석 목사(48)는 교인들을 이렇게 세상에 파송하고, 교인들은 새로운 ‘결의’로서 세상으로 나아간다. 비우기보다는 탐욕을 채워주라는 기도나 베풀기 보다는 복을 달라는 간구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교인들은 어디가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개인적으로는 능히 어려움도 감내할 힘을 갖는다. 주일이면 함께 모여 책읽고
구호단체에 1구좌 갖기 운동
쉽게 식는 ‘냄비신앙’ 경계
곰국같은 모범교인에 충실 1981년 전도사로 청파교회와 인연을 맺고 97년 담임이 된 김 목사는 깊은 산 샘물처럼 맑은 느낌이다. 시인 고진하 목사는 그를 “무쇠솥에 천천히 불을 지펴 푹 고아 낸 곰국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그같은 평가를 무기로 자신의 귄위를 쌓아 신자들의 추종을 받는 그런 목회자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채 안주하려는 신자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그가 주일이면 청년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며 <윌든>과 <체게바라> 등을 읽으면서 청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독서 열기는 교회의 어린이도서관으로 이어진다. 교인 60여명을 포함해 300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어린이도서관은 1주일에 무려 600권의 책이 대출될 만큼 활기에 넘쳐 어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인 300여명의 생각과 하는 일도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참여연대와 월드비전 등 시민·구호단체에 교인 1인당 후원금 1구좌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세상에 문을 꼭꼭 닫아 건 ‘자폐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 시민단체 실무자들을 주기적으로 초청해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다. 또 교인들은 주일 오후 등산, 노래 부르기, 볼링 등 동호회 모임을 갖기 전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데 누구도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인들로부터 존경받던 김철수 장로가 식판 수거통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남겨온 음식을 말끔히 먹어치우면서 음식을 남길라치면 “철수가 보고 있다”는 우스갯말이 돌기 시작했다. 잔반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은사와 축복을 간구하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기도는 유별나다. 그러나 조그만 체험에 냄비처럼 들끓는 것을 김 목사는 부추기기보다는 경계하는 쪽이다. 그런 은사체험이 아니라 설사 영혼의 어두운 밤이 올지라도 무쇠솥처럼 은근할 수 있으며, 다른 불쌍한 영혼들에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은혜와 시험,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이 끊임 없이 이어지는 세상에서도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사람들. 우리 곁에도 조미료를 넣지 않은 곰국 같은 목사와 교인들이 있다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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