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2 05:59
수정 : 2019.07.12 19:48
일본 가해자 가족 사례 수집·분석
일본·한국, 가족 책임 묻는 경향
범죄방지에 역효과를 낳을 수도
“비난받기 쉬운 사람 인권에 관심”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아베 교코 지음, 이경림 옮김/이너북스·1만5000원
유명인의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빌려 큰돈을 꾸고 갚지 않아 문제가 된 사례가 여럿 있었다. 자식은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고 오히려 또 다른 피해자지만, 유명인이 부모 대신 사죄하고 변제하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관련 기사에는 “그래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인데 어쩌겠느냐”거나 “피해자들은 그 유명인을 믿고 돈을 빌려줬으니 당연히 변제할 의무가 있다”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그 유명인이 겪을 극심한 고통과 사회경제적 피해를 ‘안타깝지만 부모운 없는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우리들에게, <아들이 사람을 죽였습니다>의 저자 아베 교코는 두 가지 중요한 진실을 들려준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가해자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가해자가족을 비난하고 사과와 변제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은 더 큰 범죄로 연결될 뿐 우리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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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내 수감자가족 지원단체 ‘세움’에 의뢰해 마련된 ‘수감자자녀 인권상황 실태조사' 정책토론회 현장. 국내에서도 가해자가족 지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이너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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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교코는 2008년 일본 최초의 가해자가족 지원단체 ‘월드 오픈 하트’를 설립하고 24시간 전화상담과 변호사 지원, 일자리 지원 등을 해왔다. 그간 수많은 가해자가족들과 수감중인 가해자들을 만나 수집하고 분석한 사례를 엮어 책을 썼다. 국내 유일의 수감자 자녀 지원단체인 ‘세움’의 이경림 이사가 책을 번역하고 국내 사례를 덧붙였다.
어느 나라에서든 가해자가족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은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가족의 책임을 묻는 경향이 유독 심하다. 언론의 보도 태도도 확연히 다르다. 일본보다 범죄발생율이 훨씬 높은 서구에서는 가해자가족의 신상정보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일본에서는 가족이 마이크 앞에 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한다.
가해자가족 대부분은 가족의 범죄를 전혀 예견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며 경찰이 들이닥치거나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고 언론사 취재차량이 집 앞에 몰려들면서 현실과 맞닥뜨린다. 가족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데, 자신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신문이나 다름없는 경찰조사를 수시로 받고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 이사와 전학을 반복한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이혼과 파혼을 하고 친척과 지인들에게 외면당한 채 철저히 고립된다. 재판과 피해보상에 드는 비용 때문에 거액의 빚을 지거나 가해자가족의 취약한 심리상태를 노리는 사이비종교와 사기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여성과 아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본은 전업주부 비율이 높기 때문에 남편이 범죄로 구속되면 갑자기 생계와 양육을 도맡게 된 여성들이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남편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아내가 만족시키지 못해 이런 일이 생겼다”는 비난까지 받는다. 아이들은 ‘범죄자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스스로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자라난다. 생활고와 냉대에 시달리다 범죄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가족이 이토록 고통을 겪는다면, 가해자는 경각심을 갖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까. 수많은 수감자들과 면담을 해온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수감자는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가해자와 연을 끊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가족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가해자를 가족의 일원으로 보듬고 대신 피해보상을 하는 가해자가족 역시 재범을 막지는 못한다. 가해자와 ‘공동의존’ 상태에 놓여 결국 더 많은 피해자만 양산하게 된다. 저자는 “사회가 가해자가족에 대한 연대책임을 강하게 요구할수록 범죄방지에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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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마련한 ‘수감자자녀 양육지원 사례경험 세미나'에서 원작자인 아베 교코 ‘월드 오픈 하트’ 이사장이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이너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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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의 수감자가족 지원단체인 ‘세움’과 일본의 가해자가족 지원단체 ‘월드 오픈 하트’가 공동으로 마련한 ‘수감자자녀 양육지원 사례경험 세미나’ 현장. 이너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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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가해자가족을 지원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피해자가족 지원이 먼저 아니냐”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 모두 피해자가족을 위한 제도가 충분치 않다. 때로는 가해자가족이 나서서 피해자와 그 가족을 탓하고 언론과 여론이 2차가해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가족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가족의 인권을 ‘먼저’ 챙긴다고 해서 가해자가족의 인권이 ‘나중에’ 자연스레 보장될 리는 없다. 차라리 그 반대의 경우가 더 확률이 높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비난받기 쉬운 이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인권을 위한 일이라고, 저자는 가해자가족의 삶을 빌려 말하고 있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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