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2 06:02
수정 : 2019.07.12 19:52
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기지촌 여성들과 입양문제 다뤄
“입양인 삶 통해 제도 문제도 제기”
단순한 진심조해진 지음/민음사·1만3000원
조해진은 문화의 교차와 습합 속에서 역사와 현실,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천착하는 소설들에 특장을 보여 왔다. 수록작 대부분이 외국을 배경으로 하거나 외국인을 등장시킨 최근 소설집 <빛의 호위>(2017), 그리고 벨기에로까지 흘러간 탈북인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2011)가 대표적이다.
새로 나온 그의 다섯번째 장편 <단순한 진심> 역시 그런 조해진 소설의 경향에 충실하다. 사실 이 작품은 <빛의 호위>에 실린 단편 ‘문주’를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주인공 문주는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 프랑스에서 ‘나나’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던 그는 한국 신문에 실린 인터뷰를 보고 그의 사연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겠다는 서영의 제안에 따라 한국에 온다. 그는 처음엔 서영의 제안에 회의적이었는데, 헤어진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마음이 바뀐다. 스스로 엄마가 되기에 앞서 자신의 생모를 만나거나 적어도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신작 소설 <단순한 진심>을 낸 소설가 조해진. “탄생과 죽음을 통해 생명을 환대하고 보내는 데에는 오히려 단순하고 가장 근원적인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제목에 담았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그의 한국 체류는 자신의 이름 ‘문주’의 의미를 찾는 일에 바쳐지고 그것이 곧 서영의 영화가 된다. 문주는 그가 서너살 때 철로에서 그를 발견해 1년 정도 키웠던 기관사가 그에게 붙여준 이름. 그가 발견된 청량리역, 기관사와 그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살았던 아현동 집, 기관사 가족을 떠나 입양되기까지 2년 정도 지낸 인천의 고아원 등 지난 여정을 되밟고 관련자들을 만나면서 문주와 서영은 ‘문주’라는 소설의 중심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문주가 머무르는 이태원 집 1층 ‘복희식당’ 할머니 연희의 이야기는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룬다. 문주가 입양아 출신임을 알게 된 연희는 문주에게 음식을 해 먹이며 유난히 살갑게 군다. 연희는 벨기에로 입양 보냈다는 흑인 혼혈 소녀의 사진을 문주에게 보여주는데, 문주는 그런 연희를 “내 생모 같은 사람, 지켜 주고 키우는 대신 버리고 도망가 버린” 사람이라 생각해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입양 이야기가 교차한다.
‘문주’라는 이름의 기원과 의미, 더 나아가 생모를 찾는 과정과 함께 연희와 혼혈 소녀 사진에 얽힌 비밀을 확인해 가는 과정은 이 소설에 추리적 재미를 더한다. 연희와 혼혈 소녀를 통해서는 이태원의 미군 기지촌 여성들과 입양 제도를 둘러싼 현대사의 아픔이 조명된다. 입양 보낸 소녀에게 숱한 편지를 보냈으면서도 답장을 받지 못했던 연희는 어른이 되어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소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문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던 기관사 역시 오래 전에 세상을 뜬 뒤였다.
|
신작 장편 <단순한 진심>의 작가 조해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기지촌과 고아원, 입양 같은 세목에 주요 인물들의 죽음까지 더해져 자칫 소설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워질 수도 있었을 텐데,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관사와 연희의 죽음은 문주 뱃속 아이의 탄생으로 상쇄될 뿐만 아니라 그 탄생의 산파 구실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세상에서 떠나는 연희를 제대로 배웅하는 것, 그것이 내게로 오는 너를 맞이하는 나의 방식”이라는 문주의 독백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다가, 지난 시절 기지촌 보건소 간호사였던 연희가 기지촌 여성들 및 그 아이와 꾸렸던 일종의 ‘대안 가족’은 사회적 상처에 맞서는 여성들의 공감과 연대로서 현재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9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조해진은 “입양 문제를 단순한 가해·피해의 차원에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가 입양인이 아니라 쓰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개인적 삶을 충실하게 쓰면서 그를 통해 입양의 제도적 측면에 관한 문제도 제기하고 싶었어요.”
|
신작 장편 <단순한 진심>을 낸 작가 조해진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특별한 악인이나 격렬한 갈등이 나오지 않고, 상처와 고난 속에서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너무 ‘착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는 “인물들을 단편적으로 다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에는 이해와 증언의 역할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