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7.12 06:02 수정 : 2019.07.12 19:42

얼굴 없는 SF 작가·영화평론가 듀나
단편 14편 수록 소설집 두 권 펴내
시간 여행, 인체개선 시술 등 소재
‘완성하지 못할 듯한 이야기’도 던져

두 번째 유모
듀나 지음/알마·1만5300원

구부전
듀나 지음/알마·1만5300원

“대문 앞에 서 있는 건 시아버지의 시체였습니다. 우뚝 서서 우리를 향해 매섭게 눈을 뜨고 있었지만 우린 모두 시체란 것을 알았습니다.” 죽은 시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세 아들이 3년간 곁을 지킬 요량으로 움막을 만들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때는 조선시대 말기인 1842년. 시어머니는 죽은 남편이 멀쩡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도 아들들부터 찾았다. 곧 세 아들이 뒤따라 뿌연 눈에 피투성이가 되어 대문으로 들어섰고, 사람들을 공격하고 목을 물어 피를 빨기 시작했다. 양반 남자들에게 맞선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 집의 며느리 중 하나다.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와 살던 주인공은 아버지 사후 지적장애가 있는 부잣집 아들의 아내가 되는데, 그 남편이 1년도 못 살고 죽은 뒤 시댁에 살던 참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이 며느리는 인간인 채로 남게 되는데, 결국 뱀파이어가 된 시댁 식구들의 먹잇감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남장을 하고 여자로는 나다닐 수 없던 바깥에 나가 먹잇감이 될 남자들을 집으로 유인했다. “변장 덕택에 그동안 오로지 남자들만의 것이었던 온갖 특권을 누리고 그들만이 알고 있던 정보를 공유하게 된 것은 덤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조선의 철학자였던 시아버지는 본인의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듀나의 소설집 <구부전> 표제작의 줄거리다.

듀나처럼 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이 한국에 또 있을까 싶다. ‘듀나’는 필명인데,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90년대부터 인터넷에서 영화 리뷰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최소한 중년의 나이이리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으로, 듀나라는 이름으로는 주로 영화비평과 소설을 쓰고 있다. 2000년께부터 홈페이지 ‘듀나의 영화낙서판’(djuna.kr)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의 ‘듀나 게시판’이라는 자유게시판이 아주 오랫동안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으로 역할했다. 듀나는 또한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 때부터 에스에프(SF) 소설을 썼고, 지금까지 소설과 비소설을 여러 권 출간했다. 누군가에게는 귀가 닳도록 들은 ‘또?’ 싶은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그게 누구라고?”에 머무는 질문을 또 한 번 낳는 이야기.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면 소설을 읽어보면 된다.

지난 1월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좀비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좀비로 변한 조선 시대 백성들이 의녀를 물어뜯고 있다. 듀나의 ‘구부전’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를 등장시킨다. 넷플릭스 제공
이번에 출간된 <두 번째 유모>와 <구부전>은 듀나가 2005년 이후 발표한 14편의 단편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책 말미에는 아주 간략한 ‘작가의 말’이 실렸는데, 각 소설의 발표 지면과 발표 시기가 안내되어 있다.

<두 번째 유모>에 실린 작품들은 시간여행을 비롯해 인체를 개선하는 시술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단편 ‘미래관리부’에서는 21세기 후반에 사는 인류의 후손들이 조상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조상들이여, 우리는 미래에서 온 후손들입니다. 더 이상 당신들은 역사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이미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의문이 제기된다. 메시지를 전해오는 이들이 선조를 배려하는 후손이 아니라 외계에서 온 침략자들이라는 주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건 침략이고 식민지 건설입니다. 우린 그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침략은 성공적입니다. 우린 그들에게 복종하고 있고 어떤 저항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지구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후손이라고 믿으면서요.” 이제 이 이야기는 정보를 보내오는 주체의 정체를 폭로하며 끝날까?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그들’ 때문일까? ‘우리’ 때문은 아닌가? 어느 쪽이든 망하고 말 거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같은 책에 실린 ‘사춘기여, 안녕’은 무척 짧고 간단하며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실현될 상황에 대한 상상이다. 주인공은 학교에서 ‘시술’을 받지 않은 유일한 학생 연우다. 시술을 반대하는 사람이 바로 연우의 아빠다. 아빠는 아무 시술도 없이 학교에 들어간 일을 자랑스러워하라는데 연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연우는 분노에 사로잡히고 감정기복에 휘말리는 전교의 유일한 학생이다. ‘암메네롤’이라는 시술을 한 뒤 “폭력 사건은 76%, 성폭행은 81%가 줄었습니다.” 아이들은 더 빨리 배우고 더 능력 있는 직업인이 된다. 연우의 아빠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사춘기 아이답게 컸으면 한다. 결국 연우는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아빠를 고소하기로 했다. 아빠가 자신의 종교적 믿음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고. 아버지는 무신론자였다. 그에게 종교가 있다면 ‘자유의지’를 추종했을 뿐. 인간이 인간답다는 말 속에 숨은 무수한 폭력과 일탈의 가능성을, 아주 어린 나이에 아예 제거하고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시술의 안정성은 보장되었다. 당신은 시술을 받겠는가? 아이에게 시술을 권하겠는가? 처음에는 ‘그래도 아이는 아이답게’라고 생각하다가, 연우가 시술 이후 놀고 싶은 마음을 굳이 억제하지 않고도 책상에 앉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질 사람이 많으리라. 무엇보다도 연우는 마침내 아버지를 긍휼히 여길 수 있게 된다. 아버지는 인류 최후의 사춘기를 겪고 있을 뿐이니까.

듀나의 작풍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대체로 듀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기주장이 강한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은 애타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청중들을 간절히 원하는 데 반해 응답을 얻지 못한다. 보수적인 조선 사대부 남성도, 무신론자라는 미래의 진보적인 남성도 타인의 삶을 움직여 본인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에 비해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에는 무척 게으르다. 중년 남자를 대하는 듀나의 태도는 그렇다 치고, 듀나는 소설에서 서로의 시선을 인지하는 어린 소녀들의 의지에는 유독 민감한 경향이 있는데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퀴어물로 진전될 법한 순간들을 집요하게 잡아내곤 한다.

<구부전> 말미에 실린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들에 관하여’라는 글은 이 소설들의 연장선에서 무척 즐거운 독서다. 아이디어가 충분히 단단하지 않아서 듀나가 도저히 완성하지 못할 듯한 이야기 몇 개를, 입양하겠다는 작가가 있다면 한번 발전시켜보라고 던지는 글이어서다. 이 하나하나의 발상들을 한번 머릿속에 굴려보시길. 어쩌면 생각하는 도중에 당신만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