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9 06:00
수정 : 2019.07.19 19:59
장벽-세상에서 가장 긴 벽 잔카를로 마크리·카롤리나 차노티 지음, 사코·발라리노 그림/내인생의책·2만원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던 어딘가의 나라. 갑자기 왕이 신하에게 묻는다. “여봐라, 어쩌다 우리 왕국에 이토록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살게 된 것이냐?” “폐하, 왕국이 이렇게 된 건 오래된 일이옵니다.” “짐은 다른 색깔의 사람들은 보고 싶지 않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어린이책 이야기 맞나, 싶을 정도로 요즘 이야기다. 그것도 최근 연일 국제뉴스를 장식하는 트럼프의 발언, 민주당의 유색인종 여성의원들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해 논란이 된 인종차별 발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책의 제목 역시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치고, 중남미 이민자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형국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나온 이 책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역시 난민 이슈로 몸살을 앓았다. 국경과 지역,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쌓아지고 있는 장벽들은 갈수록 직접적이고 노골적이 되어 어린이들의 머릿속까지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학교나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차별과 혐오의 말들에 익숙해지는 아이들을 위해 보여줄 만한 그림책이다.
왕은 다른 색의 사람들을 내쫓고 흡족해하면서 높은 장벽을 쌓기를 원하는데, 하필 벽을 잘 만드는 석공들은 빨간 사람들이다. 또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자니 녹색 사람들이 필요하다. 시원하게 뻗는 도로를 잘 닦는 사람들은 회색 사람들이다. 이렇게 각자의 재능과 요구에 따라 사람들을 찾다보니 결국 처음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책 중간에 팝업처럼 세워놓은 두꺼운 종이 벽이 실제 장벽의 단단하고 비정한 질감을 전달하는 듯해 인상적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그림 내인생의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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