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지음/한겨레출판·1만8000원 후텁지근한 여름날이었나 보다. 하루는 조카들에게 “오늘의 공부는 어떠하냐”라고 물었다. 날이 더워 괴롭다는 조카들에게 “그러면 부채질을 하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정신을 집중해서 읽으면 자연히 서늘한 기운이 일어나니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아직도 헛 독서를 면치 못했구나.” 요즘 같으면 무슨 ‘꼰대’ 같은 말이냐는 원성을 샀을 법하다. 그런데 화자는 여성이다. 명문가 규수였던 여자 선비, 조선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의 일화다. 18세기 여성들에게 허락된 학문의 자유는 시와 그림, 그리고 한문보다 상스럽다 취급 받았던 한글 필담을 나눌 수 있는 정도였다.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한 모든 사대부 남성들은 성리학을 깨우친 성인이 되길 꿈꿨다. 여성들은 교육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순종을 강요받던 틈바구니에서 윤지당은 당대의 대 성리학자였던 둘째오빠 녹문 임성주의 지원 아래 낮에는 할 수 없었던 공부를 밤에 남모르게 이어갔다. 지적 탐구에 대한 열망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에 그는 “감히 아녀자의 분수를 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듯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는 겸손하고도 당찬 고백을 남긴다. <임윤지당 평전>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남편과 아이의 죽음을 겪은 20대, 사대부 남성들의 시기와 경계를 받으며 성리학자로 우뚝 선 중년과 사후 지식인들의 평가까지 담겼다. 그가 평생을 바쳐 도달한 결론,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책 |
내 이름은 아녀자가 아니다 |
김경미 지음/한겨레출판·1만8000원 후텁지근한 여름날이었나 보다. 하루는 조카들에게 “오늘의 공부는 어떠하냐”라고 물었다. 날이 더워 괴롭다는 조카들에게 “그러면 부채질을 하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정신을 집중해서 읽으면 자연히 서늘한 기운이 일어나니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아직도 헛 독서를 면치 못했구나.” 요즘 같으면 무슨 ‘꼰대’ 같은 말이냐는 원성을 샀을 법하다. 그런데 화자는 여성이다. 명문가 규수였던 여자 선비, 조선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의 일화다. 18세기 여성들에게 허락된 학문의 자유는 시와 그림, 그리고 한문보다 상스럽다 취급 받았던 한글 필담을 나눌 수 있는 정도였다.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한 모든 사대부 남성들은 성리학을 깨우친 성인이 되길 꿈꿨다. 여성들은 교육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순종을 강요받던 틈바구니에서 윤지당은 당대의 대 성리학자였던 둘째오빠 녹문 임성주의 지원 아래 낮에는 할 수 없었던 공부를 밤에 남모르게 이어갔다. 지적 탐구에 대한 열망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에 그는 “감히 아녀자의 분수를 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듯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는 겸손하고도 당찬 고백을 남긴다. <임윤지당 평전>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남편과 아이의 죽음을 겪은 20대, 사대부 남성들의 시기와 경계를 받으며 성리학자로 우뚝 선 중년과 사후 지식인들의 평가까지 담겼다. 그가 평생을 바쳐 도달한 결론, ‘하늘에서 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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