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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6 06:01 수정 : 2019.07.26 20:09

시절일기
김연수 지음/레제·1만5000원

김연수(사진)의 새 산문집 <시절일기>에는 2003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쓴 글들이 묶였다. 각 글의 머리에는 제목이 따로 없이, 글을 쓰거나 발표한 날짜가 적혀 있다. 시간 순으로 묶지는 않고, 글의 성격에 따라 5개 부로 나뉘어 실었다. 맨 뒤에는 ‘사랑의 단상, 2014년’이라는 단편소설을 부록처럼 덧붙였다.

책 제목은 ‘일기’지만, 말 그대로 일기를 모은 것은 아니다. 책 맨 앞에 실린 글에서 김연수가 생각하는 ‘일기’의 범주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대학 시절 공책에 다양한 형태와 성격의 글을 썼다. 시처럼 짧은 글도 있었고, 대화가 들어간 소설 형식도 있었으며, 책을 읽은 감상문도 있었다. 어떤 형식이건, 작가가 되기 위한 습작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때 나는 습작을 한 게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일기를 썼다.” 그런데, 이렇게 무언가를 계속 쓰다 보니 소설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가 생각하기에 일기 쓰기의 두 가지 큰 원칙이 있다. “읽는 사람이 없을 것. 마음대로 쓸 것.” 이런 지침에 따라 쓰는 일기는 “창의적 글쓰기에 가까워진다.” 일기에서 시나 소설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게다가 일기를 씀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한 번 더 살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깊은 자기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시절일기>는 그런 의미에서 특정 시기 김연수가 쓴 ‘일기’이자 자기 탐구 및 이해라 할 수 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다지도 나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가,는 의문 속에서 지난 몇 년간을 살았다고 말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 그러다가 작년에 수학여행을 떠난 고교생 300여 명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나의 절망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2015년 2월에 쓴 이 글은 책 제목의 전반부인 ‘시절’의 내용과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김연수가 이 일기를 쓴 무렵은 ‘나쁜’ 시절이고 ‘절망’적인 시절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 나쁨과 절망의 고갱이라 할 만했다. 세월호 관련 글들은 책의 제2부에 집중적으로 묶였다. 참사 한 달여 뒤에 쓴 글, 1주년을 맞아 쓴 글, 2주년에 쓴 글, 3주년을 앞두고 세월호 인양에 즈음해 쓴 글 등등. 그 가운데 한 글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십대에 접했던 한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그토록 많은 글을 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죽음이란 1988년 5월15일 명동성당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성만의 죽음이었다. ‘평화통일’과 ‘미국 축출’을 외치며 자결한 그의 죽음은, 나쁜 시절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절망과 희망에 대해, 현실과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고, 그에 답하고자 김연수는 “그토록 많은” 글을 썼다. 그런 점에서라면, 세월호의 죽음들이 조성만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글을 씀으로써 김연수는 답을 얻었던가. 미당의 시를 노래로 만든 황병기의 <국화 옆에서>를 듣다가 그는 깨닫는다. 거울을 보는 누이의 늙은 얼굴에 답이 있었다. “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늙음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를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이다. ‘일기’의 취지가 거기 있지 않겠는가.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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