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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6 06:01 수정 : 2019.07.26 20:14

‘젠더법학’ 양현아 서울대 교수 편역
세계적 여성 법학자들 주요 논문 소개
여성의 자유와 평등권 투쟁 집중논의

평등, 차이, 정의를 그리다-페미니즘 법이론
양현아 엮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3만6000원

세계사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많은 인물 중에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여성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때로는 가장 차별받는 계급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못한 존재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20세기 초 이후 여성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수많은 여성이 있었다. 인종, 계급, 민족을 막론하고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제2계급이자 소외된 지위에 속한 성으로서 ‘차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굳이 ‘여성의 인권’ 내지 ‘페미니즘’이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참정권과 재산권 그리고 혼인과 가족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해왔던 여성의 삶 자체에서의 고투가 ‘페미니즘 법이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평등, 차이, 정의를 그리다>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젠더법학과 법사회학을 가르치는 양현아 교수가 10여년간 공동으로 읽으면서 연구한 논문을 편역한 책이다. 학교 법여성학 강좌에서 강의하고 연구한 자료이니만큼 저명한 학자들이 쓴 법과 페미니즘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투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하고 페미니즘 서적이 조명을 받았지만, 이 책과 같이 구체적으로 법과 페미니즘 분야를 전문적이고 상세히 알려주는 저서가 많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슬프게도 20세기 초부터 전문적인 법학 교육을 받은 많은 여성 법률가와 여성 법학교수 중에서 법여성학을 가르치고 페미니즘에 대한 서적을 저술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여성운동의 핵심이슈로 등장하였던 ‘평등권 수정안’(Equal Rights Amendment)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1981년 8월22일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평등권 수정안 지지 운동은 미국 헌법에 남녀차별 금지를 명시하자고 요구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해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자들의 주요 논문을 완역하여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페미니즘과 법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제1부에서는 페미니즘 법학방법론(캐더린 바틀렛)과 여성의 ‘쾌락적 삶’에 눈길을 주면서 목소리를 부여하는 방법론(로빈 웨스트)적 차이를 총론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2부는 임신한 경우, 동등한 대우와 특별대우 논쟁을 ‘평등의 수수께끼’(웬디 윌리엄스)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평등과 차이(허마 힐 케이), 차이와 지배(캐더린 맥키논)를 내용으로 하는 글들을 ‘동등대우와 특별대우 논쟁’이라는 대주제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성적 평등의 재구성(크리스틴 리틀턴), 평등 대 차이의 해체(조안 스콧), 그리고 법적 관계에서 재산권의 객체가 될 수도 있었던 역사적 존재로서의 여성과 자아(패트리샤 윌리엄스)에 대해 신랄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을 원해왔는데, 오로지 여성의 자유와 평등만은 더 오래 싸워야 했고, 많은 조롱과 혐오를 이겨내야 했고, 지난한 법적 투쟁을 해야 했다는 점에서 제1부의 페미니즘 법학방법론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총론은 페미니즘 서사의 시작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3월8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제2부는 여성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취의 대상이었던, ‘평등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이 장은 여성들이 쟁취하고자 했던 자유와 평등이, 전심전력으로 싸우고 법정에서 투쟁해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모성보호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사례들, 게둘딕 판결(1974), 라플레어 판결(1974), 칼페드 판결(1987) 등에 나온 판사들의 상세한 논거를 읽으면서,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강요, 여성에 대한 특별한 대우,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의 경계를 넘나드는 논의들에 대해 한번 더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다.

평등에 대한 논의를 재구성한 제3부의 첫 번째 글도 평등과 차이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글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쓴 크리스틴 리틀턴의 인간적 면모와 사고 방법론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진 적이 있다.) ‘평등과 차이’의 이분법을 경계하고, 오히려 불평등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 조안 스콧의 글도 여성주의 법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 책의 마지막, 패트리샤 윌리엄스의 글은 저자가 소외받는 ‘인종’에 속한 사람, 그리고 차별받는 지위에 속한 ‘여성’이라는 다중적 정체성을 설화적으로 쓰고 있는데, 마치 마주 앉은 자리에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애써 담담한 척하며 듣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권리’는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지금 누리고 있는 권리, 자유와 평등은 차별과 싸워온 수많은 여성들과 동지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여성운동의 역사와 성과를 페미니즘 법이론, 그리고 다수의 관련 판례들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윤진숙 숭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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