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2015) [정유정 추천 공포소설] 독서에 관한 한, 나는 전작주의자다. 일단 꽂히면,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읽는다. 그래야 작가와 작품, 세계관에 대해 할 말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장은 작가별로 분류하고, 출간연도순이 아닌 애착도 순으로 꽂아둔다. 이야기의 제왕이자 다산의 제왕인 스티븐 킹은 다섯 칸짜리 책장을 두 개나 차지한다. 60여 편의 장편과 수백 편에 이르는 중단편 중, 장편 <미저리>가 선두 자리에 꽂혀 있다. 그리고 2, 3, 4번은 지금부터 소개할 중편소설집이다. <사계> <자정 4분 뒤> <별도 없는 한밤에>. <사계>에는 그의 넓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문학적인’ 중편들이 실려 있다. 저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나치 전범과 소년의 부적절한 만남을 통해, 궁극의 심리묘사를 보여주는 ‘영리한 소년’. 시체를 찾아 떠난 소년들의 여행기이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서정적인 성장소설, ‘더 바디’. 기묘하고 슬픈 임산부의 이야기, ‘호흡법’. 하나같이 현기증 나게 재미있다. 여운과 감동은 덤. 80년대 후반, 킹은 술과 약에 절어 살았다. 구강청정제인 리스테린까지 마셔댈 정도였다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출간된 소설에선 폭주하는 광기가 느껴진다. <자정 4분 뒤>도 거기에 속한다. 역시 네 편이 실려 있다. 불가해한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비행기와 생존 탑승객의 이야기를 그린 ‘랭골리어’. 표절에 대한 작가의 공포를 담은 ‘비밀의 창, 비밀의 화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분실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도서관 경찰’. 카메라의 흑마술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인 ‘폴라로이드 개’. 1999년, 킹은 산책을 나갔다가 음주운전자의 승합차에 치인다. 그로 인해 수차례의 수술과 죽을 위기를 넘긴 후 불사신처럼 복귀했다.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감탄스럽다. 세계관은 원숙해지고 시야는 깊어졌다. 다만-근거 없는 직관으로-폭발하던 광기가 약간 누그러든 느낌이었다. 심지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혹시 그 사고로 ‘미치기 싫은’ 후유증을 얻은 건 아닌지. <별도 없는 한밤에>에는 불경한 의심을 거두고, ‘할렐루야’를 외치게 만든 광기 어린 소설들이 실려 있다. 각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뻔뻔한 나머지 외설스럽기까지 한 인간 내면의 어둠이다. 짐작이지만, 제목인 ‘별도 없는 한밤’은 이 어둠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역시 네 편이 실려 있다. 한 살인자의 파멸 과정을 통해, 욕망과 증오라는 야수를 통제하지 못하면 삶이 어떤 식으로 타락하는지를 그려 보이는 ‘1922’. 차를 몰고 나갔다가 인생 최악의 봉변을 당한 여성이 ‘왜 내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풀어가는 이야기,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는 수상한 노점상과의 거래로 하염없이 행복해지는 남자의 이야기다. 인류의 유서 깊은 내적 비밀인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을 주제로 삼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이상한 이야기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은 20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온 남편의 실체를 뒤늦게 알아차린 여자의 피 터지는 ‘졸혼’ 이야기인 ‘행복한 결혼생활’.
소설가 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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