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정희진 지음/교양인(2018)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길 꿈꾼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사실은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모두에게 좋은 책이란 것도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좋은 책이 있는 게 아닐까. 20대에 내가 속한 세계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영웅이었고, 그의 글은 정말이지 반짝이고 멋진 것들이었다. 대표 도서 <페미니즘의 도전>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책으로 읽힌다. 팬이라면 작가의 전문 분야 책을 섭렵한 후에는 맨얼굴이 비치는 에세이에 눈길이 가는 법. 이 책에 열광했을 누군가라면, <혼자서 본 영화> 역시 좋은 책이 되어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저작 중 자신을 가장 많이 드러낸 책이기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진정으로 영화를 ‘덕질’하며 쓴 글들이고, 그런 덕질에는 호흡의 가쁨, 설렘의 두근거림 등 진심이 묻어나기 때문이다.(그러니 부디 지금 이 글도 그러하길) 팬이 아니더라도 좋다. ‘사랑, 관계, 제도, 저항’에 대한 여성주의적 성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좋은 책이 되어줄 것이다. 영화를 읽으며, 종국에는 사유에 가닿기 때문이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성찰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이다. 가령, 영화 <하얀 궁전>을 읽으면서는 사랑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권력관계를 해체하고 해부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자기 확신의 활동”이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라고 말이다. 이제 사랑은 사랑을 하는 주체에게 일어나는 일이 되고, 그 고유의 감정으로 생겨난 부산물들은 그 자신의 것이 된다. 사랑받는 대상이 잘나서 생긴 일이 아니니, 사랑의 부산물들이 이양될 필요는 없다. 권력관계의 역전이다. 제도의 모순을 짚어내고 저항의 방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는 말하자면, ‘망한’ 사회가 나온다. 학교폭력과 성폭력의 공간으로서의 교실. 하지만 ‘망한’ 사회도 사회이고, 사람들은 그 사회가 원하는 주체가 되어 성원권을 얻고자 분투한다. 영화에서 피해자인 소녀는 삭발을 하고, 학교에 나타난다. 그들 세계에서 기꺼이 쓸모없어지는 것. 자원으로서의 외모를 버리고, 주체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타자가 되는 일은 낙인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주지 않겠다. 너희들은 나를 망칠 만큼 대단하지 않으니. ‘망한’ 사회에 처했을 때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저항의 시작은 무엇에 인정받을지 스스로가 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라는 이 책의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영화가 다른 경험이 된다는 뜻이므로. 책을 읽는 일도 같다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을 만 명이 읽는다면 만 개의 독서가 있는 것이라고. 각자의 경험과 감각이 책의 문장들과 부딪쳐 자신만의 고유한 독서가 생겨날 테니 말이다. 이 책 <혼자서 본 영화>가 모두에게 같은 독서를 선사하는, 모두에게 좋은 책은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경계의 부딪침을 선물하는 좋은 책이 되어 주리라 생각한다. 조유나 동아시아 인문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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