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9 06:02
수정 : 2019.08.09 20:57
메이플소프-에로스와 타나토스 퍼트리샤 모리스로 지음, 윤철희 옮김/을유문화사·2만8000원
항문에 꽂은 채찍을 꼬리처럼 보여주며 도발적으로 뒤돌아보는 남자, 정장 차림의 바지 사이로 길다랗게 비어져나온 검은 남근, ‘피스팅’(생식기에 손을 넣는 행위) 등 각종 사도마조히즘적 취향….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는 금기에 도전하는 작품 세계로 1970~80년대 미국 뉴욕의 예술계에서 명성을 얻은 사진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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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촬영한 패티 스미스의 음반 <호시스>(Horses)의 커버. 을유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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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는 메이플소프의 의뢰를 받은 저널리스트가 쓴 그의 전기다. 개인의 자유 의지와 욕망이 한껏 분출했던 70~80년대, ‘예술가를 꿈꾸던 야심찬 청년이 온갖 금기에 도전하는 삶을 살다가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 자체는 익숙할 수 있다. 다만 시종일관 솔직한 태도로 보는 이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그의 작품처럼, 메이플소프에 대한 가감없는 이야기는 어쩐지 강렬한 울림을 준다.
1946년 뉴욕 퀸스에서 태어난 메이플소프는 가톨릭 전통의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샌님이었지만, 점차 가족을 등지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욕망에 이끌린다. 스무살께 뒷날 ‘펑크록의 대모’가 되는 패티 스미스와 만나 첫사랑에 빠졌으나, 결국 헤어졌고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확고히 자각한다. 다만 두 사람은 함께 ‘성공’을 추구하는 동지였으며, 죽을 때까지도 관계를 유지했다. 메이플소프는 애초 사진이라는 예술 형식에도 매달리지 않았다. 큐레이터인 존 매켄드리, 미술사가이자 수집가 새뮤얼 웨그스태프 등 후원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사진작가로서 경력을 쌓고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인정받고 유명해지기 위해 부지런히 사람들을 유혹했고 끝없이 인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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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연주자 기돈 크레머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을 연주한 음반 <엘 탕고>(El Tango) 표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작품이 쓰였다. 을유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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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에 도전하는 것은 그의 작품의 핵심이었다.” 메이플소프는 중독된 듯 섹스에 빠져들었는데, 그에게 섹스와 예술은 하나였다. 클럽을 돌아다니며 파트너를 찾고, 섹스를 한 다음 그를 모델로 삼아 사진을 찍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S&M)을 ‘섹스와 마법’이라 부를 정도로 사도마조히즘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한동안 여성 보디빌더인 리사 라이언을 집중적으로 찍었고, 그 뒤엔 오랫동안 흑인 남성들을 탐닉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꽃 정물 사진”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꽃 사진을 잘 찍었지만, 그는 꽃 촬영을 싫어했다. 그건 팔기 위한 사진이었다. 금기를 넘는 것만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런 메이플소프의 작품 세계는 1989년 그가 마흔셋의 나이에 에이즈로 세상을 뜬 직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죽음에 임박해 시작한 그의 순회 전시회 ‘완벽한 순간’은,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에서 전시 취소를 당하며 “예술과 외설” 논란을 일으켰다. 전시를 진행했던 신시내티 현대미술관(CAC)은 외설죄로 기소당했고,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의 입에 소변을 보는 장면(‘짐과 톰, 소살리토’) 등이 예술이냐 아니냐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결국 신시내티 현대미술관 쪽의 승소로, 메이플소프의 작품 세계는 적어도 ‘외설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다. 당시 배심원단들은 “역겹고 호색적이며 불쾌하지만, 그 사진들에 예술적인 장점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메이플소프의 복합적인 삶은, 다큐멘터리 영화 <메이플소프>(원제는 Look at the pictures, 2016), 패티 스미스가 자신과 메이플소프에 대해 쓴 자서전 <저스트 키즈>(아트북스) 등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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