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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6 05:59 수정 : 2019.08.16 20:24

첨성대의 건축학적 수수께끼
김장훈 지음/동아시아·1만6000원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 ‘스톤헨지’는 50t에 이르는 거석 80여개로 이뤄져 있다.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베일에 싸인 채 마법사의 기념비, 제례의 장소, 해시계 등 갖가지 가설들이 쏟아진다. 상상과 추측의 세계를 넘어, 많은 과학자 및 전문가들이 부지런히 관련 논문을 내놓은 덕분에 스톤헨지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층 풍부해졌고, 문명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장훈 교수(아주대 건축학과)는 스톤헨지처럼 세계적 주목을 받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에겐 중요한 미스터리 ‘첨성대’에 도전했다. 단연, 첫 질문은 ‘첨성대는 뭐에 쓰는 건축물인가?’이다. 어릴 적 학교에선 ‘첨성대’(瞻星臺·별을 바라보는 대)라는 한자 뜻처럼 ‘세계(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배웠지만, 정작 그 근거를 대라고 하면 답이 궁색하다. 첨성대에 관한 첫 기록인 <삼국유사>(12세기)엔 신라 선덕여왕 치세에 지었다는 얘기만 나와 있고, <세종실록지리지>(15세기)엔 첨성대의 수치가 적혀 있지 용도는 밝히지 않았다.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와서야 별 보는 기능이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그것도 조선 전기 문장가인 조위(1454~1503)의 시를 참조해 쓴 것이었다.

첨성대를 구성하는 돌의 단의 수(27)는 달의 공전주기, 첨성대 꼭대기 상부 정자석 2개 단을 더한 전체 단 수(29)는 음력 날수, 남창(南窓) 위아래의 각 단의 수(12)는 1년을 이루는 12개월, 위아래 단수 합은 24절기를 가리킨다는 등의 해석도 ‘천문대론’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9m를 조금 넘는 높이의 첨성대에 올라간다고 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별을 관측할 수 있었겠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밖에도 국립천문대 앞마당에 세워진 상징물, 고대 수학 교과서였던 <주비산경>을 상징한 축조탑, 불교 수미산을 뜻하는 상징물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지은이는 이런 가설들을 반박하기보다는 ‘이야기’로 남겨두자고 제안하면서, 실측평면도를 분석해 7가지 의문점을 제시한다. 왜 기단과 남창의 방향이 3도 어긋났는지, 왜 원통형 몸통의 각 단이 일그러진 동그라미 모양인지, 왜 몸통이 기울어졌는지, 왜 12단까지만 내부에 흙이 채워져 있는지 등등. 그는 흙과 돌을 이용한 첨성대 건립 공사 과정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면서 이런 의문들이 우연인지, 설계자의 의도인지, 공사 과정의 오류 때문인지 등을 짚어나간다.

지은이는 건축공학자답게 공학과 수학을 이용해 자신만의 ‘첨성대 이야기’를 추가한다. 다양한 수학모델을 사용해 낮 길이의 변화 추이를 도출해 그래프를 그리고, 첨성대 입면곡률과의 상관관계를 수학적 기법으로 따져 비교한다. ‘새로운 이야기’의 결론은 첨성대 몸통의 우아한 곡선 모양은 계절에 따른 낮과 밤 길이 변화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라인들이 이를 의도한 것인지, 우연히 이런 상관관계가 나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지은이는 설계냐 우연이냐의 문제 또한 여백으로 남겨둔다. 결국, 독자들은 이 책을 다 읽어도 첨성대의 비밀을 여전히 말끔히 풀지 못하고, 개운치 못한 뒷맛에 입을 다시게 된다. 하지만 그처럼 정답이 없더라도 물음표 가득한 길을 기꺼이 걷는 것이 과학적 태도라면 어쩌겠는가. 과학의 겸손함 앞에 어느 정도 찝찝함은 감수해야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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