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9 21:17
수정 : 2019.08.19 21:20
|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19일 서울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민음사 제공
|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디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한글판 출간 간담회
“미투운동 혁명적…진정한 변화 기대”
“한국 젊은 페미니스트 만나 강한 인상”
|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19일 서울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민음사 제공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뒤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2003)로 ‘영연방 작가상’ 등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청년들의 사랑과 아메리칸 드림의 명암을 그린 소설 <아메리카나>(2013)는 전미 서평가협회상을 받고 <더 타임스> 선정 ‘21세기 필독서 100’과 <뉴욕타임스 북 리뷰> 선정 ‘올해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렇게 작가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뒤 그는 에세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2014)와 <엄마는 페미니스트>(2017)로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반열에 올랐다.
<아메리카나> 개정판과 <보라색 히비스커스> 번역 출간에 맞추어 한국을 찾은 그가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페미니즘과 자신의 문학 세계에 관해 밝혔다.
“저에게 페미니즘은 정의 운동(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여성은 오랫동안 억압받고 소외를 당해 왔습니다. 평등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북유럽 같은 나라라 하더라도 젠더 평등이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바꾸기 위한 운동이 페미니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정책, 제도를 바꿔야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이 자동적으로 바뀌는 건 아닙니다. 사고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게 중요한 데, 그것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스토리텔링입니다.”
아디치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와 편견, 부정적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끌어안아야 하며, 인권운동 식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페미니즘이라고 명확히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적인 미투운동이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미투운동은 성폭력과 관련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믿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미국에서도 가령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자 여성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기를 주저해 왔는데, 결국은 피해자 여성이 직장을 떠나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입니다. 미투운동도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운동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운동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작가는 페미니스트로서 소신을 분명히 밝혔다. 사진 민음사 제공
|
아디치에는 “어제(18일)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만났다”며 한국의 페미니즘에 관한 생각도 밝혔다.
“한국의 세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어떤 분은 온라인 상의 협박 때문에 가명을 쓴다고 하더군요. 메갈리아 현상도 흥미로웠습니다. 미러링이라는 되치기 방식도 이 사회에 여성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한번쯤 주춤하고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봅니다. ‘몰카’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 같은 선진국이 남녀 임금 차이 등에서 후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는 한국 페미니스트들과의 대화에서 탈 코르셋 운동에 관해서도 들었다며 “나 자신은 여성성과 패션, 화장품을 사랑하지만, 여성스러움과 외모에 대한 사회의 요구에 맞서 선택권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탈 코르셋 운동은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운동을 하는 여성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즘은 남녀 모두를 억압에서 해방하고 행복하게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더 많은 남성들이 참여했으면 한다”며 “다만 일부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이념에 사로잡혀 같은 여성을 향해 당위와 교훈의 말을 늘어놓는 등 내부 갈등을 일으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디치에는 사회적으로는 존경 받는 인물이면서 가정 안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라고 밝혔다. 또 영화화가 예정된 <아메리카나>와 관련해서는 “흑인들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 그리고 가난과 분쟁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민을 택한 아프리카인들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세계 무대에 선보인다는 생각 때문에 기대되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