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성호 옮김/창비·2만8000원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종종 여러 마르크스주의 논객들이 다시 출몰하곤 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2017년에 내놓은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도 원제에 ‘마르크스, 자본’이 명징하게 박혀 있고 가치법칙·잉여가치 등 마르크스의 독창적 범주와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긴 하다. 하지만 150년 전에 쓰인 저 정치경제학비판 저작을 재해석하는 데 목표를 둔 폐쇄적·교조적·도식적인 숱한 마르크스주의 서적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하는 부류는 아니다. 중국 선전의 산업지구, 방글라데시의 무너져 내릴 듯한 공장들, 구글과 페이스북,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가들, 앨런 그린스펀과 도널드 트럼프, 에볼라 바이러스,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용카드 이자율과 통신·의료보험료, 피카소 작품들의 가격, 2016년 여름 중국 상위 10개 도시의 주택가격 동향, 그리고 에밀 졸라와 찰스 디킨스의 소설까지….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온갖 현상·사태·인물들이 ‘가령(예컨대)…’이라는 어휘를 앞세워 전편에 걸쳐 종횡무진 짤막하게 등장한다. <자본>을 “다시 일상의 표면으로 끌고 올라가” 자본의 전반적이고 광범한 순환·축적 리듬이 대중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바꿔놓고 또 일상적 투쟁과 저항을 촉발시키는지 조명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 비판에 가깝다. 영국 노동계급 출신의 ‘공간지리 정치경제학’ 교수(뉴욕시립대학 대학원)가 <자본의 한계>(1982년) 이후 ‘마르크스 과학’ 전통을 지칠 줄 모르게 갱신해온 끝에 팔순 만년에 설파하는 명제는 이른바 ‘운동하는 가치의 경로’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자본가로서 행동한다. 저자는, 자본의 회로 안에서 누구나 “경제적 이성의 광기에 사로잡혀 정신 나간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자신의 일상을 차분히 대면하며 생각에 잠겨볼 것을 요청한다. 이 광기는 그 어떤 쉬운 요약이나 피상적인 서술조차 피해가는 불명료하고 혼란스러운 영역으로 악명이 높다. “우리를 압류하고 가두고 소외·타락시키는 화폐(신용화폐·부채)의 엄청난 힘에 마치 ‘홀린 사랑’처럼 행동하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신 나간, 심히 우려되는 세계이다.” 독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자본>의 방법론을 그는 여전히 따른다. 그러나 ‘착취’ 같은 으스스한 말은 삼가고 장황한 철학적 사변이나 수리경제적 증명도 배제한 채 개성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힘차고 흡인력 있는 서사로 ‘오늘날 자본의 풍경들’을 우리 앞에 다시 드러낸다. 이런 솜씨는 분명 흔치 않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책 |
정신 나간, 우리시대 ‘자본’의 풍경들 |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성호 옮김/창비·2만8000원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종종 여러 마르크스주의 논객들이 다시 출몰하곤 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2017년에 내놓은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도 원제에 ‘마르크스, 자본’이 명징하게 박혀 있고 가치법칙·잉여가치 등 마르크스의 독창적 범주와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긴 하다. 하지만 150년 전에 쓰인 저 정치경제학비판 저작을 재해석하는 데 목표를 둔 폐쇄적·교조적·도식적인 숱한 마르크스주의 서적 목록에 또 하나를 추가하는 부류는 아니다. 중국 선전의 산업지구, 방글라데시의 무너져 내릴 듯한 공장들, 구글과 페이스북, 실리콘밸리의 벤처자본가들, 앨런 그린스펀과 도널드 트럼프, 에볼라 바이러스,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연방준비제도, 신용카드 이자율과 통신·의료보험료, 피카소 작품들의 가격, 2016년 여름 중국 상위 10개 도시의 주택가격 동향, 그리고 에밀 졸라와 찰스 디킨스의 소설까지….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온갖 현상·사태·인물들이 ‘가령(예컨대)…’이라는 어휘를 앞세워 전편에 걸쳐 종횡무진 짤막하게 등장한다. <자본>을 “다시 일상의 표면으로 끌고 올라가” 자본의 전반적이고 광범한 순환·축적 리듬이 대중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바꿔놓고 또 일상적 투쟁과 저항을 촉발시키는지 조명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 비판에 가깝다. 영국 노동계급 출신의 ‘공간지리 정치경제학’ 교수(뉴욕시립대학 대학원)가 <자본의 한계>(1982년) 이후 ‘마르크스 과학’ 전통을 지칠 줄 모르게 갱신해온 끝에 팔순 만년에 설파하는 명제는 이른바 ‘운동하는 가치의 경로’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자본가로서 행동한다. 저자는, 자본의 회로 안에서 누구나 “경제적 이성의 광기에 사로잡혀 정신 나간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자신의 일상을 차분히 대면하며 생각에 잠겨볼 것을 요청한다. 이 광기는 그 어떤 쉬운 요약이나 피상적인 서술조차 피해가는 불명료하고 혼란스러운 영역으로 악명이 높다. “우리를 압류하고 가두고 소외·타락시키는 화폐(신용화폐·부채)의 엄청난 힘에 마치 ‘홀린 사랑’처럼 행동하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신 나간, 심히 우려되는 세계이다.” 독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자본>의 방법론을 그는 여전히 따른다. 그러나 ‘착취’ 같은 으스스한 말은 삼가고 장황한 철학적 사변이나 수리경제적 증명도 배제한 채 개성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힘차고 흡인력 있는 서사로 ‘오늘날 자본의 풍경들’을 우리 앞에 다시 드러낸다. 이런 솜씨는 분명 흔치 않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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