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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6 06:01 수정 : 2019.09.06 20:02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
보배 지음/아토포스·1만3000원

‘퀴어는 ○○하다.’

‘퀴어’는 ‘이상한’, ‘수상한’ 등의 뜻을 지닌 영어 단어로, 한때는 성소수자에 대한 모욕과 경멸을 담은 표현으로 활용됐다. 당사자들의 적극적 전유에 의해 경멸의 뉘앙스를 벗긴 했지만, 여전히 퀴어는 얄팍한 이미지 몇 장으로 설명되기 쉽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찍힌 몇 장의 사진 속 그들은 때론 음란하거나 소란스러워 보인다. 포털사이트 댓글에서 묘사되는 퀴어는 아프거나, 가련하거나, 사악하다. 그런 이미지가 퀴어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을까?

퀴어가 ‘얄팍한 이미지’ 이상으로 재현되는 건 ‘문학’을 만났을 때다. 서사는 겉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문학은 퀴어의 삶을 가장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교감의 공간이다.

<우리는 무지개를 타고>는 ‘퀴어’와 ‘문학’에 대해 퀴어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보배가 쓴 에세이다. 그는 문학을 통한 성소수자 인권 신장에 대한 낙관을 갖고 퀴어문학 플랫폼 ‘무지개 책갈피’를 만들었다. 이 플랫폼은 퀴어문학 작품을 아카이빙하며 리뷰를 싣고 창작강좌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책은 퀴어문학 이야기인 동시에 퀴어로 살아가는 지은이 본인의 이야기다. 활동가로서 쌓은 공력을 바탕으로 그는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재닛 윈터슨)처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퀴어문학부터 그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퀴어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작품까지 넓게 소개한다. 이광수의 <무정> 속 여성 동성애 서사를 짚어내고,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이 머금은 퀴어함을 긍정한다. ‘전지적 퀴어 시점’을 취하면 어떤 작품이든 ‘퀴어하게’ 읽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론이다.

“에리카 종의 소설 <비행공포>에는 ‘상상력의 부재. 바로 그게 괴물을 만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 나는 어지간한 작품은 퀴어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퀴어문학인 것 같은데요’라는 목소리를 되도록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람들은 퀴어들이 우울하거나, 자폐적이거나, 슬프리라 쉽게 짐작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말하는 퀴어의 삶은 그보다는 덜 극적이다. 대신 지속된다. 지은이는 ‘모태 신앙’이었던 자신의 과거 신앙 생활을, 퀴어문학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사랑을 숨기느라 숨가빴던 시절 이야기를 문학을 경유해 풀어낸다. 성소수자로 사는 삶이 깨진 거울의 세계가 아니라 과속방지턱을 만나는 것이라 말하는 그는 오늘도 매끄러운 도로 위를 달린다. 높은 턱을 만날까봐 머뭇거리는 마음을 한켠에 품은 채. 퀴어로 사는 삶은 매일 두들겨 맞는 삶이 아니다. 다만 차별과 폭력이 예상되는 범주로 매일 몸을 던져 넣을 수밖에 없는 삶이다. 퀴어 당사자인 지은이의 기쁨, 슬픔과 분노가 작품들과 함께 부드럽게 흐드러진다. 그의 등을 도닥여 준 작품 목록 자체가 근사한 퀴어문학 아카이빙이다.

천다민 미디어랩 젠더팀 피디,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m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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