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0 06:01
수정 : 2019.09.20 20:25
아이를 꿀꺽 삼키는 호랑이의 눈으로 본 젠더 감수성
3학년 1반 교실에선 박진감 넘치는 수업이 펼쳐지고…
우리 학교에 호랑이가 왔다 김정신 글, 조원희 그림/웅진주니어·1만원
비 오는 등굣길 아침, 호랑이가 우리 학교에 왔다. ‘제발 우리 학교가 아니길’ 바랐던 교장 선생님은 혼비백산한다. 이날은 아이들이 한 명씩 호랑이 배 속으로 사라진 지 99일째다. 하루만 잘 버티면 됐다. 하필 100 번째 날, ‘우리 학교’가 호랑이한테 딱 걸렸다.
제11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수상작 <우리 학교에 호랑이가 왔다>는 아이를 꿀꺽꿀꺽 삼키는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성 고정관념을 깨고 어린이들의 양성 평등 감수성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담았다. 옛적 호랑이 등에다 오늘날의 ‘젠더’를 태워 전개하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내달린다. 어린이 심사단의 선택을 받은 이유겠다.
|
호랑이 구호는 100명의 아이를 삼켜 호랑이 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전국 학교를 어슬렁거린다. 웅진주니어 제공
|
‘남자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성차별적 편견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분홍과 파랑은 성별을 갈라치는 기준색으로 작동한다.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는 때론 기성질서와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최전선이 된다. 줄이 삐뚤삐뚤한 걸 제일 싫어하는 교장 선생님처럼 획일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어른들과 ‘내 아이만은 안 된다’는 가족주의적 이기심이 더해지면서 아이들 저마다의 개성과 선호도는 설 자리를 잃곤 한다.
|
준희는 호랑이 배 속에 진짜 아이들이 있는지 귀를 대 본다. 웅진주니어 제공
|
호랑이 구호가 삼킬 아이를 찾아 들어간 3학년 1반 ‘분홍 공주’ 준희가 그랬다. 분홍 우비에 엄마를 졸라서 산 분홍 장화까지, 비 오는 날 더 도드라진 분홍색을 본 아이들은 놀리고 구분 짓고 못된 말을 퍼붓는다. 준희와 친하게 지냈던, 여자 이름이라고 놀림받던 선영이조차 머리가 찰랑거리고 분홍색을 좋아하는 준희를 슬슬 피한다.
|
‘분홍공주’ 준희. 웅진주니어 제공
|
“난 아직 모르겠어요. 내가 남자인지, 여자 아이인지.” “넌 너지.” 호랑이와 수업받는 호들갑스런 3학년 교실에서 호랑이 구호와 준희는 ‘케미’가 잘 맞는다. “사라진 아이들이 정말 배 속에 있어요?” 두려움 없이 배를 쓰다듬고 귀를 갖다 대 보는 세심함도 남다르다. 남자 아이들은 털을 뽑아보고 꼬리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며 장난 걸기 바쁘고, 여자 아이들은 호랑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든다. ‘호랑이는 여자 아이만을 삼킨다’니 말이다. 여학생 14명의 학부모들은 몰려와 내 아이가 호랑이 밥이 될까 항의 소동을 벌이고, 교장 선생님은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든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물의 아이로 태어난다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상거리를 던져준다. 호랑이 아이는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할까? 타인의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랑이처럼. 곰의 아이는? 너구리의 아이는?
“강하다는 건 자신을 믿는 거야.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부족한 게 뭔지 아는 거지. 그러면 힘이 약하고 덜 똑똑하고 놀림을 당해도 당당하다.” 호랑이 구호는 이런 말을 남긴다. 호랑이의 100번째 선택은 누굴까? 초등 4~6학년.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웅진주니어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