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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0 19:20 수정 : 2019.09.22 15:19

[짬] 여성 인물 이야기 전문작가 박정희씨

지난 9일 이이효재 선생(오른쪽)은 병상에서 몇차례 연습한 끝에 첫 구술 일대기 <이이효재>를 쓴 박정희(왼쪽) 작가에게 자필 서명을 해줬다. 사진 김경애 기자
“아니, 아니, 아직 책이 나온 걸 알리면 곤란하니까, 안 보이게 가방에 넣어줘요. 내가 아직 준비가 안됐으니까.” 지난 9일, 경남 창원의 경상대병원에 장기 입원중인 이이효재 선생은 갓 출간된 자신의 일대기 <이이효재>(다산북스)를 한사코 숨겨 놓으라고 했다. 1924년생, 우리 나이로 아흔여섯 고령인 선생은 자신을 돌봐주는 병원 의료진과 지인들에게 직접 서명을 해서 선물하고 싶다며, 수첩을 꺼내 힘겹게 이름 쓰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이 가장 먼저 서명한 책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옆에 있던 필자 박정희(56) 작가였다. “처음 구술 인터뷰를 시작한 이래 16년 만에야 책을 마무리해서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다행히 선생님께서 만족스러워 하시니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하기도 하고요. 특히 표지에 넣은 ‘여성주의 미술 1세대’인 화가 윤석남의 ‘우리는 모계가족’ 그림이 좋다고 하시네요.”

책의 부제처럼 ‘대한민국 여성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인 이이효재 선생의 첫 회고록을 쓰게 된 인연과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사연을 박 작가에게 들어봤다.

“두 딸에게 본보기 될 인물 찾아서”
2003년 첫 구술 인터뷰 16년만에
청소년용 에세이 ‘이이효재’ 출간
‘한국 여성운동의 살아있는 역사’

“대학시절 페미니즘 눈뜨게 해준 분”
제자·후학들 ‘평전’에 밑거름 기대

이이효재 선생이 지난 12일 자신의 구술 일대기 <이이효재>에 ‘문재인 대통령님 김정숙 여사님께 드립니다’ 자필 서명을 하고 있다. 책은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다산북스 제공
“사실 여성학이나 사회학 제자도 아니고 여성운동가도 아닌 제가 존경스러운 선생님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쓰게 됐으니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죠. 1980년대 초반 대학 시절부터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에 눈을 떴고 그 영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여성주의 작가가 됐거든요. 책 표지에 부러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밝힌 이유이기도 해요.”

1986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나와 대학 동기인 김한정 의원(더불어 민주당)과 결혼해 2녀1남을 둔 박 작가는 위로 두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여성의 삶과 현실을 고민하게 됐다. “딸들에게 본보기로 삼을 만한 여성 인물이 누구일까 찾아보니 의외로 적합한 책이 없었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직접 쓰기로 했죠.”

2001~02년 걸쳐 어린이용 ‘여성 인물 이야기’ 시리즈 5권을 써내면서 그는 동화작가 명함을 갖게 됐다. 국내 인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를 소개했다.

“그때 여성 인물 이야기 시리즈를 보고 다른 출판사에서 ‘이이효재’ 선생님 책을 내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처음 직접 찾아뵌 게 2003년 진해의 작은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 하실 때였는데,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죠. 그렇게 구술 인터뷰를 진행하긴 했는데 막상 정리하려고 보니 부담이 컸어요. 근대 한국 여성사 자체인데다 말씀을 들을수록 큰인물로 다가왔거든요.”

그런 와중에 담당 편집자가 바뀌고 박 작가 자신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 등 우여곡절이 겹치면서 책 출간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미국에 머물면서 내 안의 여성의식을 되짚어보게 됐어요. 여성 선구자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외할머니의 삶이 떠올랐죠. 서당 훈장의 딸이었는데도 ‘여자란 이유로’ 배우지 못한 걸 평생 억울해하시던 외할머니에게 제가 고향 정읍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한글을 깨우쳐 드렸거든요. 환갑 넘어 성경을 혼자 읽을 수 있게 됐다며 얼마나 기뻐하시던지요.”

한국 여성학의 선구자이자 여성운동의 대모 이이효재 선생의 첫 구술 일대기 <이이효재>는 사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목표보다 3배 많은 성금을 모았다. 이이효재 선생이 가장 먼저 깃발을 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 단체 ‘정의기억연대’에 기부한다. 사진 다산북스 제공
그는 2006년 ‘여성차별 사례 5가지’를 엮은 자전적 성장 동화 <외할매 만세>(우리교육)를 펴내면서 여성주의 작가의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이이효재’편은 여전히 그에게 숙제로 남아 있었다. “구술 인터뷰 시작할 때 받은 계약금도 이미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기부한 까닭에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선 간략하나마 어린이용으로 내기로 했어요.”

그렇게 2012년 <도서관 할머니, 책 읽어 주세요-여성운동의 큰어머니 이이효재>(우리교육)가 먼저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도 선생님께서는 몹시 흡족해 하셨지만, 제 스스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죠.”

그무렵 그는 틈틈히 역사학과 교회사 공부를 하던 중 선교사 셔우드 홀의 <조선회상>(좋은씨앗)을 읽다가 선교사로 먼저 조선에 왔던 그의 어머니 로제타 홀을 발견했다. 이이효재에게 어릴 적부터 가장 큰 영향을 준 ‘신여성’ 고모 이애시를 비롯해 한국 최초의 전문직 여성들 대부분이 로제타 홀과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2012년 미국 필라델피아 근처의 퀘이커 영성학교 펜들 힐에 머물렀는데, 마침 로제타 홀이 다녔던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의 문서보관소와 가까웠어요. 193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로제타 홀의 손녀 필리스 홀 킹이 두 시간 거리인 버지니아 매클린에 살고 있었고요.”

여섯 살 때 조선을 떠난 필리스는 간직하고 있던 할머니의 일기장과 조선 선교 초기의 일기장 4권, 두 아이를 키우며 쓴 육아일기 2권, 편지 등을 그에게 기꺼이 보여줬다. 덕분에 그는 2015년 평전 <닥터 로제타 홀>(다산초당)을 펴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6년 동안 제 작업들이 모두 ‘이이효재’로 모아진 셈이었어요. 그 사이 선생님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늘 한결같이 따뜻하게 손잡아주신 덕분에 ‘모녀처럼’ 친숙해졌지요. 차츰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뵈면서 더는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서 용기를 냈어요. 어린이용에 이은 청소년용으로 부담없이 익히도록 원고를 다시 정리했어요.”

박 작가는 ‘이 책이 이화여대 제자들과 여성학계에서 준비중인 <이이효재 평전>(가칭)에 작으나마 밑거름이 된다면 아쉬움이 덜 할 듯 하다’고 덧붙였다.

창원/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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