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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7 06:00 수정 : 2019.09.30 15:43

현대미술의 이단자들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을유문화사·2만5000원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심장이었던 런던의 풍경은 이렇게 묘사됐다. “전쟁의 빛과 색채의 조건 아래에서 이전 세계의 중심 수도로부터의 점진적인 쇠잔, 먼지와 침울한 분위기.”

그러나 독일의 대공습으로 폭삭 무너진 도시의 침묵 속에서도 예술은 스러지지 않았다. 런던의 알려지지 않은 구석에서 그림 그리기의 치열함과 작품을 대하는 절대적 기준 속에서 고뇌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종전 이후 재건의 희망 속에서 런던은 프랜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 루치안 프로이트 등 주목받는 화가들을 키워냈다. 큐비즘이 싹튼 파리, 르네상스의 꽃이 만발했던 베네치아처럼 런던 소호의 보헤미안 지역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본질적 의미를 묻는 화가들의 터전이 됐다.

프랜시스 베이컨, <회화 1946>. 1946년. ?The Estate of Francis Bacon
영국의 이름난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20여년 동안 진행한 화가, 평론가, 화상 등과의 방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1945년~1970년대 런던에서 활동한 이 화가들의 예술적 성장기를 재구성한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는 진실은 이들이 모두 ‘회화로 이룰 수 있는 것’에 몰두했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가령 그림의 즉흥성과 우연성을 중시했던 베이컨은 그림의 메시지나 스토리텔링보다는 “물감이 더 소리 높여 말하기”를 원했다. 그의 집과 가구는 모두 물감 범벅이었고 그는 팔레트 대신 팔뚝 위에 물감을 섞어 그리다 테라빈유 중독에 걸리기도 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기 작품들을 모두 스스로 파기해버렸다.

그리는 대상의 내면으로 들어가길 원한 이도 있다. 무의식의 성채를 발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는 성실한 관찰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실제 본 것으로 엄격하게 제한된 그림 안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결합했다. 가령 애인의 얼굴에 떨어지는 빛이 빚어내는 형태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길 바랐고, 모델의 재현을 넘어 ’체현’하고자 했다.

호크니는 회화의 힘을 확신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시작해 사진 콜라주 등 다양한 실험을 했던 그는 장르를 바꿔가면서도 강인한 ‘호크니 월드’를 구축했다. 그는 인간의 눈은 카메라 렌즈처럼 기계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며 그 때문에 회화가 카메라의 시각에 지배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낡은 매체로 여겨졌던 구상화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이단자’들은 강한 개성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회화의 순수성을 믿었다. 대중의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노장 호크니와 달리, 요절하거나 알코올에 무릎을 꿇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이들이 저마다 창조한 시각적 우주가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은 반박이 불가능하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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