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7 06:01
수정 : 2019.09.27 20:00
조현병에 걸린 두 아들 중 한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기록
정신질환자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온 역사도 다뤄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 지음, 정지인 옮김/심심·2만4000원
당신이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에서 정신질환을 소재로 이야기가 나왔다고 치자. 당신의 머리를 오랫동안 다듬어온 미용사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지 모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교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때 유망한 피아니스트였으나 이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자기 이모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당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지인은 지금껏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아들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열일곱 살 때 갑자기 사라져 몇 주 뒤 앞뒤가 안 맞는 편지 한통을 보내고서는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한 장소에서 만난 이들은 비슷하게 겪어왔던 이런 고민에 대해서 끝까지 침묵할 수도 있다.
100명 중 1명의 발병률. 이는 조현병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팩트다. 이토록 흔하지만 우리는 이 병이 암보다도 훨씬 더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조현병을 둘러싼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조현병에 걸린 두 아들 중 한 아이를 잃고 남은 아이의 투병을 지켜본 아버지의 기록이다. 이 아버지는 2006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영화화한 소설 <아버지의 깃발>을 쓴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론 파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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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은 100명 중 1명에서 발병하는 매우 흔한 정신질환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철저히 숨겨져 왔다. 평생 조현병으로 고생하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2)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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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스와 대학교수인 아내 사이에는 3살 터울의 두 아들이 있었다. 부부 사이는 더없이 화목했고, 두 아들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조현병이라는 태풍이 이 가족을 강타한 건 둘째 케빈이 17살이 되던 때. 꼬마 때부터 기타 신동으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고 언론의 주목을 받은 케빈은 버클리음대 진학을 앞둔 고교생이었다. 환각과 망상, 걷잡을 수 없는 조증, 폭포수 같은 독백과 장광설로 병은 시작됐다. 몇 차례의 입원과 퇴원, 휴학과 복학 끝에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조현병에 대한 의료진의 무지도 한몫했지만, 부부 역시 아들의 증상이 일시적인 스트레스이길 바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길 회피한 탓도 있었다. 조현병 환자의 75%가 그러하듯 아이는 자신이 멀쩡하다고 믿는 질병인식불능증으로 약물 복용을 거부했고, 약물 복용과 거부 사이의 지난한 사투를 벌이다 결국 스무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부부가 겨우 마음을 추스를 때쯤 첫째 아들 딘에게도 조현병이 나타났다. 동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메시아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환각과 망상, 조증과 무기력, 질병인식불능증으로 인한 약물 거부, 누군가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하는 편집증, 수차례의 자살 시도 등이 딘에게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뒤 신문사 기자로 차곡차곡 경력을 쌓고 있던 딘의 인생도 가족의 일상도 다시 한 번 수렁에 빠졌다.
글로 먹고사는 작가이지만 저자는 자신의 아이들 이야기만은 절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뜬 케빈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처참한 고통이었고,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딘에 대한 사생활 침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사건이 이들 부부로 하여금 세상을 향해 발화하게 만들었다. 그중 하나는 위스콘신 주지사에 출마한 한 정치인의 보좌관이 쓴 이메일이 공개된 일이었다. 당시 위스콘신주는 정신병동 관리 부실 의혹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해 보좌관은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들이 정신질환자로 살아가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저자 역시 정신질환을 외면하고 싶어 했음을, 그래서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과 정신질환자들의 비가시화에 본인도 가담해왔다는 것을 통렬히 깨닫고 저자는 마침내 펜을 들었다. 이 책의 원제는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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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즐겨 그린 영국 화가 루이스 웨인(1860~1939)은 정신병으로 생의 마지막 15년을 병원에서 보냈는데, 일부 심리학자들은 그가 투병 시기에 배경과 대상에 추상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간 그림을 그린 것을 두고 조현병을 앓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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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개인적 체험담을 씨실로, 지금껏 세상이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의학적 역사를 날실로 엮어냈다. 정신질환자들을 감옥 같은 수용소에 밀어 넣고 고문과 처형을 일삼던 중세시대부터, 우생학을 통해 정신질환자들을 실험에 마구잡이로 이용하던 나치 시대를 거쳐, 정신질환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약물투여에 대한 도덕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까지,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맞물리면서 정신질환자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 혹은 ‘보여져서는 안 되는 존재’로 만들어왔는지 보여준다. 그 역사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가족만의 처절한 사투로 남기고, 미친 사람들에게 세금을 쓰는 것은 혈세 낭비라는 패러다임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다. 여전히 의료적 원인 규명과 치료법도 미미하지만, 가족과 국가의 ‘이른 치료적 개입’이 그나마 가장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것. 조현병은 대개 희미하게나마 전조 증상이 있는데, 분명 두 아들에게도 그런 증상들이 있었지만, 가족으로서 일시적인 현상으로 넘기고 싶어 했던 마음도 고백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4분의 1이 살아가는 동안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매년 미국 사회에서는 3만8천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들 중 90%가 정신질환자다. 저자는 “여러분이 이 책으로 인해 상처 입기를 바란다. 상처 입어 행동하기를, 개입하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만, 내 아들을 비롯한 모든 정신증 환자와 가족들이 견딘 고통이 완전히 헛된 것이 아니었기를 희망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가장 아프지만 가장 희망적인 책이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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