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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7 06:01 수정 : 2019.09.27 20:06

최진영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
친족 성폭력 피해 여성 주인공
일기 형식에 고통과 극복 담아

주위의 편견과 제도 문제도 다뤄
“피해자에게 누 될까 조심스러워”
“주인공의 미래 선택은 독자 몫”

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지음/창비·1만4000원

최진영의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는 강간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교 시절 친족에게 강간을 당한 주인공 제야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에 맞서 제야가 어떻게 싸워서 이기거나 지는지를 피해 당사자에 밀착해서 그린다. 피해자이면서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죄인처럼 숨어 살거나 자책을 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삼는다.

“언젠가 한번은 성범죄 피해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꼭 성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소설에 피해를 입는 여성들은 계속 나왔거든요. 그 연장선상에서 쓰기로 한 건데, 저도 다루기 어려운 소재라서 이야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다가 이제야 쓰게 된 겁니다.”

25일 전화로 만난 작가는 “이번 소설은 특히 쓰면서 조심스러웠고, 쓰고 나서도 계속 주인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2010년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인 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에서부터 최근작인 <해가 지는 곳으로>까지 최진영 소설의 여성 인물들은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된 채 그에 저항하거나 그로부터 탈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야 언니에게>의 주인공 제야는 그런 여성 인물들을 대표하는 셈이다.

2008년 7월14일, 제야는 평소 점잖고 친절했던 당숙에게 강간을 당한다. 소설은 제야가 일인칭으로 쓰는 일기와 삼인칭 시점을 오가며 서술되는데, 사건 당일에서 시작한 제야의 일기는 그 일이 있기 전의 과거로 돌아갔다가는 그날을 거쳐 이후의 날들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제야는 거듭 ‘그날’로 돌아가 사건을 복기하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사건의 여파를 곱씹는다.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2008년 7월14일)

“그냥 지금이 좋다. 하루하루를 꼭꼭 눌러서 살 수 있는 만큼 다 살아내고 싶다.”(2008년 7월13일)

소설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14일치 일기가 먼저 나오는데, 그 일이 있기 바로 전날의 일기는 그 ‘끔찍한’ 사건이 짓밟고 망가뜨려 놓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일깨운다. 가능성과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던 소녀의 삶이 돌이킬 수 없도록 훼손되고 모욕당한 것. 제야는 다시는 ‘그 일’이 있기 전의 날들로, 그 순수와 낙관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제야의 삶을 망가뜨린 것은 일차적으로는 물론 당숙이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몰이해 그리고 강간 범죄 처벌에 관한 법 규정과 처리 절차 등의 제도적 문제점은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제야를 괴롭히고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거는 너랑 나 말고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돼”라 말하는 엄마, “하지만 네 잘못도 있다”는 큰아버지, “반항한 흔적이 없”고 “강제로 그랬다는 증거가 없”다며 사건 접수를 꺼리는 경찰이 제야를 절망하게 한다.

“저항하면 죽을 것 같았다고 제야는 소리 질렀다. 강간이 잘못이지 반항하지 않은 게 어떻게 잘못이냐고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

이런 제야를 빤히 쳐다보며 “전혀 피해자 같지 않아”라 말하는 경찰은, 강간 범죄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현행 법 체계의 문제점을 대변한다.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뒤틀린 목소리들을 최근 우리 사회는 얼마나 자주 들어 왔던가. 이런 주위 반응에 고무된 가해자는 강간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큰소리친다. “그게 제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고 저당잡힐 만큼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어른들의 파렴치한 언사에 제야는 자해와 고소로 맞서지만, 무지와 편견의 철옹성은 끄떡도 않는다.

성폭행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를 낸 최진영. “성범죄와 관련한 법을 비롯해, 약자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구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며 “주변 사람들도 진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권순철 제공
<이제야 언니에게>에 바람직한 어른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그만둔 제야는 ‘강릉 이모’의 집에서 지내기로 하는데, 이 이모는 사건 이후 유일하게 제야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이다. “나는 너를 대접할 거야. 네게 도움이 될 거야”라는 다짐처럼 이모는 최선을 다해 제야를 돌보고 그가 상처를 딛고 일어서도록 돕는다.

그렇지만 상처가 제야의 몫인 것처럼,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것 역시 다른 누구도 제야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강릉에서 지내며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그날의 상처는 끈질기게 제야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남자와 단둘이 있거나 남자 무리에 있으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술을 물어뜯는 사람이 되었다. 길을 걷다가 습격당하는 상상에 빠지면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과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 제목은 표면적으로는 제야의 동생 제니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머리말로 읽힌다. 그러나 제야의 성을 같이 씀으로써 이 제목은 뒤늦은 대응과 이해에 대한 회한과 사과라는 또 다른 의미 역시 지니게 된다.

“제야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장면을 쓸 때는 제야의 고통을 묘사할 때만큼 주저했다”고 최진영은 ‘작가의 말’에 썼다. 소설 속 이모와 제니 그리고 사촌 남동생 승호가 건네는 위로와 격려의 묘사가, 그런 최소한의 ‘우군’조차 없이 홀로 싸우거나 버티는 피해자들에게 누가 될까 저어됐다는 뜻이다. 이렇듯 쉽지 않은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처리할지 역시 작가에게는 커다란 고민이었을 듯하다. 소설 결말부에서 제야가 내리는 선택이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을 지니는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제가 이 소설에서 감히 피해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한다거나 바람을 표현한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소설 결말 이후 제야의 삶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분들이 각자 제야의 미래를 상상했으면 해요. 그 상상 속에 제야의 긍정적인 삶이 많아질수록, 피해자를 대하는 이 사회의 인식도 나아지는 거라고 봅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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