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4 05:59
수정 : 2019.10.04 20:33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우먼 인 윈도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비채(2019)
의심은 추리소설을 정의하는 주요 키워드이다. 추리소설은 늘 누군가를 의심하는 장르였지만, 의심받는 대상에 따라서 장르가 달라진다. 요즈음 영미 추리소설의 중심이 된 심리 스릴러는 소설 주인공의 시점을 의심한다. 이 사람이 말하는 게, 혹은 보았다고 믿은 것이 과연 진실일까?
A. J. 핀의 <우먼 인 윈도>는 소설의 안과 밖에서 진실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여기서 흥미롭다고 말한 건 일단 내용이다. 심리 치료사인 의사 애나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광장공포증을 겪고 있다. 남편과 딸은 멀리 두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애나의 취미는 이웃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남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당연한 운명대로, 애나는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이쯤 보면 애나의 영화 취향이 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요 골격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이창>에서 따왔다. 하지만 애나가 사고로 다친 건 제임스 스튜어트처럼 다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술과 약이 없으면 하루를 보내기 어려운 애나의 목격담을 독자들조차도 믿을 수 없다. 심리 스릴러는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워 독자들의 의심을 증폭시킨다. 살인은 있었는가? 살인이 있었다면 살인자는 누구일까? 그에 앞서 피살자는 누구일까? 나의 현실은 과연 진실일까? <우먼 인 윈도>는 정형적인 플롯 안에 이런 질문들의 답을 솜씨 있게 배치해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한편, <우먼 인 윈도>의 흥미는 소설 외적인 부분에서 오기도 한다. 올해 2월, 미국 <뉴요커>지는 “서스펜스 소설가의 기만의 행적”이라는 제목으로 댄 말로리의 진실을 파고드는 긴 기사를 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로리는 매력적이고 다양한 이력을 거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차츰 그의 이야기에는 어긋나는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슬픈 가정사, 유명인들과 함께 일한 사소한 에피소드, 난관을 극복한 성공담, 말로리의 사연 중 많은 부분이 거짓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댄 말로리의 다른 이름이 바로 A. J. 핀이다. 그는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다는 말로 해명을 대신했다.
의심스러운 화자의 존재가 <우먼 인 윈도>의 안과 밖에 있다. 작가 본인을 투영한 이 작품에서 “창 안의 여자”는 길 건너에서 보인 광경만은 아니다. 컴퓨터라는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애나처럼 우리도 창 안에 갇힌 것이 아닐는지?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바깥세상의 진실도 알 수 없을뿐더러 자기의 진실도 알 수 없다. 헛되이 불가지론자가 되고 싶진 않지만, 누구나 거짓처럼 보이는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을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진실을 찾는 이가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현실 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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