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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1 10:48 수정 : 2019.10.11 16:23

크리스마스캐럴
하성란 지음/현대문학·1만1200원

하성란(사진)의 소설 <크리스마스캐럴>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가족이 막내가 겪은 유령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다. 이야기를 듣기까지의 과정과 듣는 정황, 듣고 난 뒤의 반응이 앞뒤에 배치되고, 막내 자신을 화자로 삼은 유령 이야기가 몸통으로서 소설 중심부를 차지하는 액자형 구조다. 이 작품은 또 제목이 같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과, 역시 유령을 다룬 헨리 제임스의 중편 ‘나사의 회전’의 영향과 그에 대한 오마주적 성격을 감추지 않는다.

막내의 이야기는 남편이 투자한 외딴 리조트에 혼자서 열흘간 머물렀던 때 있었던 일이다. 도저히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외따로 서 있는 리조트에는 막내 자신 말고는 다른 손님의 흔적이 없다. 교회 신도들로 짐작되는 버스 두대분의 단체손님이 잠깐 머물다 간 리조트에서 막내는 이름 대신 ‘10박’이라 불리며 외롭고 두려운 나날을 보낸다. 문고리와 창문의 잠금장치는 고장이 났고, 커튼이 없는 창으로는 “어둠 속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검고 커다란 두 눈”이 보인다. 방 문 앞 바구니에는 쓰고 내놓은 수건이 넘쳐나는데 아무도 수거해 가지 않고, 밤이면 직원이 모두 퇴근해서 리조트에는 혼자뿐이다.

상자째 사다 놓은 맥주로 끼니를 대신하다시피 하던 끝에 막내는 결국 헛것을 보고 듣는다. “아무도 없는 깊은 밤 허공으로 여자애의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여자애는 가끔 내 방 창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은 작은 개가 따라붙었다. (…)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방 안을 들여다보는 두 눈의 정체, 여자애와 작은 개의 비밀은 소설을 읽으면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막내가, 헨리 제임스 소설의 나사 조이기처럼 이야기와 삶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는 테크닉을 감상하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덕분에 독자는 “멈춘 듯 흘러가지 않는, 자신의 숨소리에도 놀라 몸을 동그랗게 움츠리는 그런 시간”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소설 전체를 놓고 보자면 부차적인 요소처럼 처리된 우리 시대 노동의 스산한 풍경 묘사에 어쩐지 눈길이 오래 머문다. 과장하자면, 이 시대 노동과 노동자의 존재야말로 유령에 가깝게 된 게 아닐까. “어쩌면 이제부터 나는 노동으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작가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현대문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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