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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1 10:49 수정 : 2019.10.15 10:44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다
라미 지음/마음의숲·1만4000원

다 이아리
이아리 지음/시드앤피드 펴냄·1만5000원

어떤 폭력도 마땅한 건 없다. 둔감하거나 익숙해져도 안 된다. 그런데도 어떤 종류의 폭력은 너무 쉽게 발생하고, 사소한 문제로 축소되며, 심지어 ‘그럴만하다’고 정당화되기도 한다. “살이 좀 찐 것 같은데?” “화장 좀 하고 다녀” “쌍커풀 수술만 하면 예쁘겠다”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일,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며 상대를 속박하고 상대에게 집착하고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그렇다. 이런 폭력엔 공통점이 있다. 통념보다 훨씬 더 피해자가 많다는 것, 피해자의 다수는 여성이라는 것,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피해자들마저 스스로 폭력을 내면화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 그리고 이런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나 처벌 제도가 여전히 부재하다는 점이다.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무서웠다> <다 이아리> 두 권의 책은 이처럼 공론장에서 쉽게 지워지지만 엄연히 다수가 겪고 있는 폭력, 식이장애와 데이트 폭력 문제를 다룬다.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무서웠다>의 작가 라미는 그림 에세이를 통해 식이장애를 겪으며 분투해왔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처음엔 그저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다이어트였다. 하지만 숨 쉬듯 자연스럽게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자란 개인이 ‘외모 강박’을 떨쳐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다>, 마음의숲 제공
잔뜩 먹고 난 뒤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토하는 일이 반복됐다. 손등에는 앞니가 닿는 자리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나중엔 목구멍에 칫솔을 쑤셔 넣어도 구토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일단 살만 빠지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미가 “이상적인 ‘나’를 그려놓고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비난하기 전에 나 자신을 혐오하고 비난하며 동정표를 구해왔”고 “현재의 내 모습을 거부하고 지금이라는 시간을 미워하며 살았다”는 걸 깨닫기엔 8년의 시간이 걸렸다.

<다 이아리>, 시드앤피드 제공
<다 이아리>의 작가 이아리는 데이트폭력 피해 생존자가 질긴 폭력의 덫을 힘겹게 끊어내는 과정을 담았다. 집착, 통제, 스토킹, 폭언과 폭행이 어떻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행사되는지, 경찰에 신고해도 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지, 왜 우리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 “진작 헤어지지 그랬냐”는 말을 해선 안 되는지 만화 속 주인공 ‘아리’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할 때 달렸던 댓글이나 독자들이 보내온 데이트폭력 경험담을 함께 수록한 점도 눈길을 끈다. “혹시 어딘가에 데이트폭력 교과서라도 있나. 어쩌면 이렇게 사연들이 닮아있냐”는 댓글처럼, 이는 특이한 소수가 겪는 일이 아니라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임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두 권 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만화책이지만 어느 한장도 쉬이 넘겨지지 않는다. 한 컷씩 읽어나갈 때마다 되새긴다. ‘여성이 겪어 마땅한’ 폭력은 없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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